다리나츠-19화 뒷이야기
20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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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 건 대체로 어떤 때일까.
-하고, 키무라 나츠키는 하늘 위를 흘러가는 구름들을 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요즘은 이렇게 자주 혼자 생각에 빠지는 시간이 많았다. 아무래도 최근에 여러 가지 일을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길이 펼쳐질 것 같은 예감이 들게 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선택하는 건 꽤 힘들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두근거리기도 했다. 그 녀석이었다면 ‘그것도 꽤 록하네-’하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츠키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뛰어왔는지 가쁘게 숨을 쉬고 있는 리이나가 보였다. 나츠키는 앉은 채로 한 손을 들어 느긋하게 인사했다.
“여- 안녕, 다리.”
“아… 여,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딱히. 그냥 앉아 있었을 뿐이야.”
“그, 그래……?”
리이나는 가까이 다가왔으나 옆에 앉지 않고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나츠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괜찮으면 앉지 그래?”
“응? 아, 아… 응.”
리이나는 사이에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자리를 비워두고 조심스럽게 나츠키 옆에 앉았다.
“그… 가끔 가다 봤는데 나츠키치는 여기 자주 앉아 있네.”
“응. 편하거든. 사방이 탁 트여서 기타 연주하기에 좋기도 하고- 지금은 없지만.”
“그렇구나…….”
리이나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나츠키를 쳐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리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나츠키는 계속 기다릴까 했지만, 결국 먼저 말을 꺼냈다.
“해산 라이브, 굉장히 좋았지?”
“응? 아… 응.”
“관객들의 호응도 좋았고 말이야. 다리, 정말 록했어.”
“그, 그런가… 에헤헤….”
칭찬을 듣자 리이나는 기분이 좋은지 굳었던 표정을 풀고 헤실거렸다. 나츠키 역시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그 쪽 프로듀서가 흔쾌히 받아들여줘서 다행이야. 겨울에 있을 무도회에서도, 또 같이 그런 라이브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응, 그러네.”
리이나는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나츠키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나츠키는 그 때의 해산 라이브로 이미 그런 생각은 떨쳤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리이나가 자신의 제안을 간접적으로 거절한 일 때문에 아직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기를 바랐지만, 사실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나츠키치…….”
리이나는 나츠키치의 이름을 부르더니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츠키한테라면 솔직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용기 내서 입을 열었다.
“……저기, 나츠키치. 사실 나 말이야. 록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진 않아…… 그, 그게 록을 정말로 좋아하긴 하지만, 뭔가 어렵달까, 잘 안 된달까… 계속 겉돌고 있는 것 같았어. 그러니까… 어차피 나는 나츠키치네와 같이 밴드를 할 수 없었을 거야. 내가 꼈다간 폐를 끼쳤을지도 모르니까….”
얼굴을 붉히고 매우 힘겹게 말을 하고 있는 리이나를 보면서 나츠키는 고개를 숙이고 빙그레 웃었다. 이제야 그런 말을 하다니.
“…알고 있었어.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뭐? 어…어떻게?”
나츠키의 말에 리이나는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그런 건 대화만 조금 해보면 바로 알 수 있어. 다리 너, 거짓말 같은 거 잘 못 하지?”
“…으, 윽…….”
리이나는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역시 저번의 라이브에서 ‘니와카(잘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 하는 사람) 록’이라고 했던 건 그런 뜻이었나……. 말을 했을 때보다 더 창피한 기분이 들어 나츠키를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 동안 나츠키 앞에서 얼마나 많이 록에 대해 얘길 했던가! 그럴 때마다 나츠키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
“하지만 괜찮아, 그래도.”
“……어?”
나츠키는 눈을 크게 뜬 리이나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네가 록을 좋아한다는 기분만은 확실히 전해졌거든.”
“그, 그래…?”
리이나는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나츠키는 그런 리이나를 보자 어쩐지 놀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허릴 숙이고 바짝 가까이 다가오자 리이나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나츠키는 리이나를 올려다보며 장난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말이야. 록을 좋아한다면서 이 록 아이돌 키무라 나츠키에 대해 몰랐다는 건 좀 너무한데?”
“…어? 어…?”
리이나는 아까보다 더욱 얼굴이 빨개져서 진땀을 빼며 나츠키를 마주보았다. 왠지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리이나를 향해 나츠키가 씨익 웃어 보였다. 그제야 리이나는 그게 농담이라는 걸 알아차렸지만, 아까보다 더욱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뭐, 뭐야! 나츠키치도 참……,”
“아하하, 다리는 진짜 재밌다니까.”
나츠키는 고개를 들고 크게 웃었다. 리이나는 민망한 와중에도 그런 그녀를 보며 ‘역시 나츠키치는 멋있구나.’하고 생각했다. 사실 나츠키와 이렇게 가까워졌다는 것도 리이나에겐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네 말이 맞아. 나츠키치는 정말로 굉장하니까. 모른다는 게 이상하지. 록에 별로 관심이 없는 미쿠도 알고 있었는데.”
“다리…?”
나츠키는 웃음을 멈추고 리이나를 쳐다보았다. 리이나는 두 손을 무릎 위로 모아 쥐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나도 나츠키의 라이브를 보고 이게 진짜 록이구나, 하고 느꼈어. 뭐랄까… 그 전부터 좋아했지만 나츠키 덕분에 록이 더 좋아진 기분이 들어. 언젠가 나츠키와 진짜 록 라이브를 해보고 싶어…….”
말을 하는 동안 리이나의 얼굴은 점점 상기되었다. 나츠키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렇게라도 나츠키와 같이 아이돌로서, 뭔가를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나 할까. 나, 좀 더 노력할게! 분명 너에 비하면 전혀 록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리이나는 고개를 들고 나츠키를 보며 환히 웃었다. 여전히 얼굴을 붉힌 채였기 때문에 순간 나츠키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내가 록을 좋아한다는 마음을, 확실히 전할 수 있도록.”
나츠키는 눈을 살짝 감았다가 다시 떴다. 자신을 바라보는 리이나의 눈이 어찌나 반짝거리는지 계속해서 보고 있기가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나츠키 역시 살짝 얼굴을 붉혔지만 리이나는 눈치 채지 못 했다.
“……록 뿐이야?”
“……응?”
리이나가 방심한 사이 나츠키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동시에 팔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이마가 거의 닿을 뻔 했다.
“아니면 나도?”
나츠키의 낮은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리자 리이나는 귀에서 김이라도 날 듯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리이나는 잔뜩 당황한 채 몸을 뒤로 빼고 더듬거리며 외쳤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정말, 그만 좀 놀려, 나츠키치-”
“아하하, 미안 미안- 그런데 정말 재밌다니까….”
“뭐야 그게! 전혀 록하지 않아-!”
리이나는 무척이나 두근거리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머릿속이 정신없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츠키는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다리, 너만 괜찮다면 내가 기타 가르쳐줄까?”
“어? 그…그래도 돼?”
나츠키의 말에 리이나는 정신이 퍼뜩 들어 대답했다. 나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한테도 연습이 되니까 좋아. 그리고….”
나츠키는 다시 두 눈을 감았다 떴다. 앞으로 지금까지와 다른 무슨 일이 일어나든, 다리와 함께 있으면 분명 재미있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 꼭, 너와 진짜 록을 해보고 싶으니까.”
리이나의 얼굴 가득 번지는 환한 웃음을 보며 나츠키는 미소 지었다. 어쩌면 당분간 혼자서 조용히 생각에 빠질 시간은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