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판 카나시호
2015. 09. 무비마스 갈등 해결 후, 아레나 라이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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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읽은 그림책에서 그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주인에게 예쁨 받던 애완 고양이가 어느 날 갑자기 버려져 길가의 야생 고양이들과 어울리게 되는데, 살아온 방식이 너무 달라 처음에는 잘 어울리지 못 했다. 그러나 버려진 고양이는 용기를 내서 다른 고양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결국 마지막에는 친해져서 다들 행복해졌다는, 전형적인 해피 엔딩의 동화였다. 그 때는 왜 그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들을 떠나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맞지 않으면 어울리지 않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왜 자신을 바꾸면서까지 남들과 부대끼며 살려 하지?
자신을 바꾼다는 용기를 내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어라. 카나는?”
방금 도착한 유리코가 연습실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자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나오가 뒤를 돌아본 채 대답했다.
“런닝하러 갔데이, 슬슬 돌아올 때가 됐는디…….”
몇 분 후 카나가 숨을 가쁘게 쉬면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땀을 잔뜩 흘리고 무척 지친 모습이었다. 나오가 재빨리 수건과 드링크를 들고 카나를 향해 다가갔다. 미나코는 카나 옆에서 부채질을 해주었다.
“수고했어, 카나.”
“다이어트 하느라 고생이데이.”
“에헤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달렸어!”
카나가 드링크를 마신 뒤 힘들게 웃어 보였다. 나는 묵묵히 거울 앞에서 혼자 스트레칭을 계속했다. 나오와 미나코는 언제나 다른 애들을 잘 챙겨준다. 실력은 제일 위면서 말이다. 그 점이 늘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 때 갑자기 계단을 세차게 뛰어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리고 세리카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들어왔다.
“와, 완성됐어요, 여러분!”
“세리카……?”
“완성됐다니 뭐가?”
세리카가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
“저희들이 스테이지에서 입을 의상이요! 방금 프로듀서 씨가 이걸 주고 가셨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세리카는 무슨 서류가 들어 있는 것 같은 파일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어떤 의상의 디자인이 자세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딱 달라붙는 검은색 가죽 재질에 배와 허벅지가 훤히 드러날 만큼 짧았다. 그야말로 눈에 뜨지 않으면서도 크게 움직여야 하는, 백댄서를 위한 의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디자인 뿐이잖아.”
“어쨌든 처음 보는 거 아이가!”
내 말에 나오가 역시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곧 다른 아이들은 세리카가 들고 있는 의상 디자인 주위를 둥글게 둘러싸고 저마다 감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와아, 예쁘다!”
“꽤, 꽤 노출이 많네….”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렇죠? 귀엽죠? 아, 이건 선배들이 입을 의상이에요!”
세리카가 다른 종이를 보여주자 다들 순순히 감탄했다. 전체적으로 흰 바탕에 빨강과 파랑이 대비를 이루며 포인트를 주고, 금빛 단추나 장식과 어울려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드는 멋진 의상이었다.
“우와…….”
“정말 예쁘다~!”
“우리들 의상도 좀 더 화려했으면 좋았을걸.”
“아니, 우린 백댄서라 안 카나.”
“안나도, 이게 더 좋아…….”
“선배들이 이 의상 입은 모습, 빨리 보고 싶다!”
“분명 다들 반짝반짝할 거예요!”
한동안 여자아이들이 높은 목소리로 꺅꺅거리는 소리만 연습실에 가득했다. 나는 디자인을 대충 보고 슬쩍 뒤로 빠져나왔다. 꽤 마음에 들었지만 티를 내고 싶진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낌새가 들어 옆을 바라보니, 카나 역시 다른 아이들 뒤로 빠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카나는 처음 한 마디 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다. 그렇다면 더욱 이상했다.
“카나…?”
내가 이름을 부르자, 카나는 화들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으, 응?”
“왜 그래?”
“아, 아니야! 아무것도…….”
우리 대화가 들렸는지, 다른 아이들도 뒤를 돌아보았다. 나오가 먼저 말했다.
“무슨 일 있나?”
“아, 아냐. 괜찮아. 저기… 난 좀 더 달리고 올게!”
카나는 그렇게 말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연습실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자, 잠깐! 이제 연습 시작할 건디-”
나오가 당황한 얼굴로 카나를 쫓아가려 했지만 내가 한 발 더 빨랐다.
“내가 데려올게. 너희끼리 연습하고 있어.”
나는 그렇게 말한 뒤, 눈을 크게 뜬 다섯 명을 뒤로 한 채 연습실을 나왔다.
참 나, 그렇게 놀랄 건 없잖아.
카나가 매일 런닝을 하는 곳은 연습실이 있는 건물 근처의 큰 공원이었다. 이 곳에는 산책이나 런닝을 위한 평평한 길이 수많은 나무들을 빙 둘러싸고 길게 나 있는데다, 중간중간 여러 종류의 운동기구들이 많아서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카나를 제외한 우리들 역시 연습 전에 몸을 풀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 같이 달리곤 했다. 물론 카나의 운동량이 가장 많았다. 카나는 얼마 전 모종의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과자를 마구 먹는 바람에 살이 갑작스레 쪄버려서, 다이어트를 위해 무척 애쓰는 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레나 라이브에 못 나갈 테니까.
“카나!”
나는 카나의 뒤를 쫓아 달려가면서 그 애의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지만, 카나가 워낙 빠른데다(살이 그렇게 쪘는데도) 내 목소리가 작아서인지 카나에게 들리지 않는 듯 했다. 나는 옆구리가 살살 아파 와서 얼굴을 찡그렸다. 소리치는 건 싫어하는데.
“카나!”
내가 마음먹고 뱃속에서부터 목소리를 쥐어짜내 크게 외치자, 그제야 카나가 멈춰서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그 애는 놀란 얼굴을 하고 이번엔 날 향해 달려왔다.
“시호? 언제부터 따라왔어?”
“……네가 연습실 나갔을 때부터.”
나는 허리를 숙이고 옆구리를 움켜쥐며 말했다. 카나는 전혀 눈치 못 챘던 것이다.
“미, 미안해.”
“됐어, 돌아가자. 런닝은 아까 했잖아. 단체 연습 맞춰봐야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카나는 고개를 숙였다.
“응… 그치만, 걱정이 돼서.”
“뭐가?”
내가 물었다. 물론 무슨 대답이 나올지는 알고 있었다.
“……아까 의상, 정말 예뻤지. 그걸 보니까 라이브 날까지 의상이 맞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이 돼서…….”
카나는 더욱더 고개를 숙이며 우울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난 카나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게 싫었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걱정이 되면, 열심히 하면 되잖아.”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가 무심코 입을 막을 뻔 했다. 예전에 카나에게 했던 말들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도……. 안 되면 될 때까지 노력하면 되잖아, 노력하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른 식으로 말할 방법은 없을까?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애써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카나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것도 웃으면서.
“……응, 그렇지. 나, 열심히 할게. 고마워, 시호!”
“뭐가?”
내가 그렇게 묻자 카나는 잠시 놀란 것 같았다.
“내가 걱정되어서 쫓아와줬잖아. 저번엔 다이어트에 런닝이 좋다고 알려주기도 했고.”
“……그 정도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거야.”
“그, 그런가?”
카나는 약간 어색하게 웃었다.
“그치만 시호도 조금 변한 것 같아. 뭐랄까… 좀 더 부드러워졌다는 느낌?”
“나는 별로 변하고 싶지 않아.”
내가 말했다. 어쩐지 조금씩 화가 나고 있는 것 같았다. 카나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너도 그래, 상처를 받았으면 그 자리에서 말하란 말이야. 나는 그런 거 몰라. 계속 이런 식으로 말해 왔는걸. 솔직하게 생각하는 걸 그대로 말하는 게 뭐가 나빠? 나는 변하고 싶지 않아. 나는…….”
나는 갑자기 다리가 풀려서 허리를 숙이고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카나도 엉겁결에 날 따라 무릎을 굽혔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말했다.
“……나는, 혼자여도 괜찮단 말이야.”
카나가 가만히 내 어깨에 손을 갖다 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이상은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조금 뒤 카나가 말했다.
“나, 나는 시호랑… 모두랑 같이 무대에 서고 싶은데.”
그 말을 듣자 왠지 어이가 없어져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너무나 카나다웠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어.”
나는 고개를 들고 카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나 때문에 상처를 받았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너한테 뭔가 말할 때마다 무척이나 신경 쓰여. 넌 몰랐겠지만.”
“그, 그랬었어? 나,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카나가 다급하게 말했다.
“시호는 솔직했던 것뿐이야. 나는 그렇지 않았고…… 네 말이 맞아. 차라리 다 터놓고 말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이미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지.”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자. 일단 돌아가서 모두랑 연습을 해야지. 다이어트에 성공해도, 무대에서 실수하면 어떡할래?”
“아… 그, 그렇겠구나!”
카나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 크게 손뼉을 쳤다. 그러더니 갑작스레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고마워, 시호! 그럼 연습실까지 같이 뛰어가자!”
“자, 잠깐. 왜 나까지…….”
나는 카나의 손에 이끌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어릴 때 그림책에서 읽었던 그 고양이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언제나 아주 작은 용기를 내는 게 가장 어려운 법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 손으로 옆구리를 쥔 채, 카나 몰래 아주 조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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