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마코-제목 없음
“하루카, 이 문제 어떻게 푸는 건지 알아?”
“그건 이 공식 아닐까? 잠깐, 찾아볼게.”
간만에 스케줄이 비는 한가로운 휴일이었지만, 하루카와 마코토는 한가하게 휴식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학교의 중간 테스트가 코앞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학교에 다니는 사무소의 다른 아이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일을 갑자기 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스케줄을 조정해서 간신히 공부할 시간을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카와 마코토, 유키호는 학년이 같은데다 시험범위도 비슷했기 때문에 시험 기간이 겹치면 종종 같이 공부를 하곤 했다. 그러나 일이 많아지고 나서는 셋 다 시간이 비는 날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운이 좋아봐야 둘이서만 만날 뿐이었다.
이 날은 유키호가 잡지 촬영이 있었기 때문에 하루카와 마코토 단둘이 모여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둘은 성적이 비슷한 수준이라 무난하게 서로 도와가며 문제를 풀어갈 수 있었다.
“아, 이제 알겠다. 고마워, 하루카.”
“으응, 덕분에 나도 더 확실히 알게 됐는걸.”
하루카와 마코토는 마주 본 채 웃었다.
“아, 같이 공부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러게. 유키호도 같이 했으면 좋았을걸…….”
“하긴 우리끼린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막히니까, 리츠코나 치하야가 봐주면 좋을 텐데.”
공부를 하다가도 한 번 대화가 시작되면 시간이 금방 흘러가곤 했다. 하지만 조급하다기보다 오히려 여유롭게 느껴졌다. 이게 친구랑 같이 공부하는 이유겠지, 하고 하루카는 생각했다. 마코토와 있을 때면 참 편하다. 물론 다른 누구와 있어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이건 마코토만이 줄 수 있는 편안함이랄까. 그렇게 생각하며 빙그레 웃음 짓는 하루카를 보고 마코토가 물었다.
“왜 웃어?”
“아무것도 아니야.”
하루카가 대답했다. 마코토는 실없긴, 하며 피식 웃어버렸다. 그리고 등을 쭉 펴더니 입을 벌리고 크게 하품했다.
“미안, 하루카. 나 조금 자도 될까? 너무 졸려서 말이야.”
“응, 괜찮아. 깨워 줄까?”
“응, 30분 정도만.”
마코토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책상 위에 엎드렸다. 하루카는 혹시 까먹을까봐 휴대폰으로 알람을 설정한 후 다시 문제집의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연필이 종이에 서걱서걱 긁히는 소리와 마코토가 새근새근 내쉬는 숨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문제를 풀다 조금 답답해진 하루카는 일어서서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열린 창문을 통해 바람이 불어오자 숨쉬기가 좀 더 편해졌다. 너무 강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아 적당히 시원하게 느껴지는, 기분 좋고 부드러운 바람이었다. 하루카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연필을 들다가 문득 마코토에게 시선이 갔다. 마코토는 엎드린 지 5분도 안 돼 깊이 잠든 건지 창문을 열어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두 팔을 베고 있는 얼굴은 오른쪽을 향해 있었고 눈은 꽉 감긴 채 입만 살짝 벌어져 있었다. 하루카는 문제를 푸는 것도 잊고 잠시 동안 그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새삼스럽지만 정말 잘생겼다. 여자아이 팬들이 그렇게 많은 것도, 미키나 유키호가 마코토를 멋있다 멋있다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런 걸 영 부담스러워하는 마코토를 떠올리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실례일지도 모른다, 라는,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방 안에서 맴돌며 가벼운 것들을 훑고 지나갔다. 하루카의 리본, 연습장의 종이, 창가의 커튼 같은 것. 하루카는 마코토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실려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크게 삐져나온 두 가닥이 아지랑이처럼 부드럽게 살랑거렸다. 하루카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다가 흠칫 놀랐다. 마치 그걸 붙잡고 싶다는 듯이.
붙잡을 수 있다는 듯이.
“……카, 하루카.”
반쯤 뜬 눈으로 마코토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이더니 점점 선명해졌다. 하루카는 눈을 비비며 책상 위에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켰다.
“아, 미안. 나도 깜빡 잠들었었구나.”
하루카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마코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도 졸린 거였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괜히…….”
“으응, 아니야. 네가 자는 걸 보고 있으니까 나도 잠이 오더라구. 왜, 잠은 전염된다고 하잖아.”
하루카가 손을 내저으며 웃음 지었다. 마코토는 조금 안심한 듯 보였지만 여전히 하루카를 진지하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를, 보고 있었다고?”
그 말을 듣자 하루카는 왠지 부끄러워졌다. 이상하게 생각하려나. 아니, 그렇게까지는……
“아…… 응.”
“…….”
마코토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창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창밖의 뭔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구나.”
하루카는 고개를 숙인 채 잠자코 앉아 있었다. 어쩐지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진 것 같아. 나 때문인가…….
“하루카.”
“응?”
마코토의 부름에 하루카는 고개를 들었다.
“네가 힘든 일이 있으면 참지 말고 말해줘. 언제든, 어떤 일이든.”
마코토가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다시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이 조금씩 흔들렸고 햇빛이 방향을 바꿔 명암이 선명해진 얼굴은 묘하게 인상적이었다. 하루카는 멍 하니 그 얼굴을 바라보며 마코토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둔해서 말하지 않으면 잘 모를 테니까.”
마코토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어쩐지 그 표정은……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 걸까.
하루카는 치마 위에 올려놓은 두 손을 꽉 쥐었다. 누군가 불을 붙인 듯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정말 자연스럽게 그리고 기분 좋게- 미소가 지어졌다.
“……응, 그럴게.”
마코토는 그 대답을 듣고 하루카의 얼굴을 보더니 역시 천천히 미소 지었다. 이것도 전염되는 걸까, 하루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더 크게 웃었다.
“약속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