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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시호-싫은 사이

Air Lee 2016. 1. 19. 16:39

2016. 01. 18. 시호 생일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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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자와 씨, 잠깐만.”

음악이 멈췄다. 운동화가 바닥을 긁는 소리, 힘들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만 잠시 동안 연습실 안을 채웠다. 그 소리마저 잦아들었을 때, 트레이너가 다시 언짢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아까부터 계속 틀리고 있잖아.”

시즈카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고개를 돌려 시호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레슨 중에 지적을 받는 건 드문 일이다. 그것이 오늘은 벌써 세 번째였다. 시호는 눈을 내리깔고 입을 꾹 다문 채 뚱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건 평소에도 마찬가지였으므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연습실 안에 있는 시어터 동료들 사이로 불안한 공기가 흘렀다. 트레이너는 엄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왜 그래? 집중하지 못 할 거라면, 오늘은 쉬도록.”

그제야 시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시호의 대답에 대다수의 아이들이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즈카 역시 자신이 방금 들은 말을 믿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잠깐, 시호!”

시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기 물건을 챙기더니 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연습실을 나가버렸다. 시즈카는 애타는 표정으로 트레이너를 바라보았다. 그 심정을 알아준 듯 트레이너가 손뼉을 탁 치며 크게 외쳤다.

좋아, 그럼 10분 휴식-”

시즈카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 쪽으로 달려갔다. 누군가 뒤에서 자길 부르는 걸 들은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연습실 밖 복도에는 이미 시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시즈카는 다급하게 뛰어가다 복도 모퉁이를 한번 돌고서, 자판기 앞에 서 있는 시호를 발견했다. 그녀를 보자 안심이 되는 동시에 화가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시호는 시즈카를 보고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태연히 버튼을 눌러 음료수를 뽑았다. 마치 시즈카가 쫓아올 줄 알았다는 듯한 태도였다. 시즈카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시호!”

?”

시호가 대답했다.

왜긴 왜야? 연습 도중에 빠져나가다니, 무슨 짓이야!”

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

그 말을 듣자 시즈카는 더욱 화가 났다. 어쩌면 말을 저렇게 재수 없게 할까. 시호는 대화를 하면서 상대를 화나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상관있어. 한 명이 먼저 빠져나가면 모두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단 말이야.”

딱히 중요한 라이브를 앞두고 있는 것도 아니고, 평소랑 같은 연습일 뿐이잖아. 그런 건 하루 이틀 빠져도 티 안 나.”

시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오늘은 제대로 연습할 기분도 아니고.”

넌 연습을 기분으로 하니?”

시즈카는 받아치듯 그렇게 말했지만, 이제는 걱정스런 마음도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그 시호가 연습에 집중을 못 하고 지적받을 정도라면, 정말로 심각한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즈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

차가운 목소리로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말할 거라고 생각했던 시호는, 놀랍게도 잠시 후 솔직한 태도로 말했다.

……인형이 없어졌어.”

?”

시즈카는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물었다. 시호는 짜증난 표정을 지었다.

인형이 없어졌다고. 여기 올 때만 해도 있었는데, 연습복으로 갈아입고 나니까 없어졌어. 틀림없이 누가 훔쳐가거나 숨긴 거야.”

겨우…….”

시즈카는 뭐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시호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눈치 챈 듯 입꼬리를 올렸다.

겨우 그런 것 때문에 그러냐고? 맞아.”

그리고 자판기에 몸을 기대더니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시즈카는 반쯤은 어이없고 반쯤은 웃기기도 해서 말없이 시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병에 걸렸거나, 가족의 상이 있었다거나 하는 정도로 심각한 일을 예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호의 표정을 보고 있자 웃기다는 생각은 천천히 숨어들었다.

인형이라면, 네가 항상 갖고 다니는 고양이 인형……?”

처음 봤을 때부터 시호의 차갑고 도도해 보이는 이미지와 안 어울리는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맞아.”

잘 찾아봤어? 어딘가에 떨어트리고 잊어버린 거 아냐?”

내가 미라이인 줄 알아?”

또 재수 없게 말한다. 시즈카는 화를 꾹 참으며 다음 말을 뭐라고 할지 고민했다. 시호와 대화하다 보면 적어도 3분 안에는 싸움으로 번진다.

……인형이 없어졌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시어터의 누군가 날 싫어한다는 거야.”

시호가 무릎 위에 턱을 댄 채 말했다. 시즈카는 잠시 할 말을 찾지 못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냥 장난친 건지도 모르잖아.”

나도 알아, 다들 날 싫어하지, 싸가지 없다고.”

…….”

알면서 왜 그래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렇다고 부정하면 너무 뻔하게 들릴 것 같았다. 시즈카는 뭐라고 대꾸하는 대신, 무릎을 굽히고 조심스럽게 시호 옆에 앉았다.

……다들 널 싫어하는 건 아니야.”

시즈카가 그렇게 말하자 시호는 그녀를 흘긋 쳐다보았다.

하지만 넌 날 싫어하잖아.”

그래, 그리고 너도 날 싫어하잖아.”

시즈카가 말했다. 둘은 눈이 마주치자 동시에 피식 웃었다.

우리가 유일하게 마음이 맞는 부분이지.”

시호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시즈카는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다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날 의심 안 해? 내가 널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

그 말을 듣자 시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진지한 얼굴로 시즈카를 바라보았다. 시즈카는 약간 몸이 떨리는 걸 느꼈다.

너는 그런 짓을 할 녀석이 아니니까.”

그 말 뿐이었다. 시호는 일어서서 음료수 캔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뒤 시즈카를 돌아보았다.

휴식 시간 끝났겠다. 가봐.”

…… .”

시즈카는 엉거주춤 일어섰다. 여전히 시호에게 할 말이 많았지만, 어느 것도 입 밖으로 내기 망설여졌다. 자칫하면 싸움으로 번질지도 모르니까. 시호와 대화할 때면 항상 그렇다. 우린 서로 싫어하니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즈카는 자기도 모르게 뛰어가 시호의 팔을 붙잡았다.

……저기, 이따가 연습 끝나면 인형 찾는 거 도와줄게.”

……마음대로 해. 시간이 남아돈다면.”

시호가 차갑게 말했다. 역시 재수 없다, 시즈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잡은 팔을 놓지 않았다. 그녀는 시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시호.”

?”

널 싫어하는 건 나뿐이야.”

시즈카는 잠시 사이를 두고 반복해서 말했다.

나뿐이라고.”

시호는 시즈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알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