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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나츠(인용)

Air Lee 2016. 6. 29. 12:49

책을 읽다 다리나츠가 생각나서 모아둔 글..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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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말라고 해줘.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럴 마음이 없었으니까.

나츠키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아서 날 붙잡지 않은 건지, 아니면 붙잡고 싶은데도 가만히 있었던 건지. 우린 언제나 이랬다. 나는 그 애에 대해 어떤 것도 쉽게 가늠할 수 없는데, 그 애는 언제나 나에 대해 다 안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었다. 그게 언제나 나를 힘들게 했다.

짐은 생각보다 많이 없었다. 사실 내 물건을 제대로 챙길 정신이 남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물건을 따로 쓴 것보다 공유한 게 더 많았다. 그래서 나는 많은 것을 버리고 갔다. 함께 썼던 것은 나츠키가 버려 줬으면 했다. 물론 그 애 마음이겠지만.

기타를 메고, 내 물건을 담은 작은 상자 몇 개를 들고, 나는 현관에 섰다.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별 장면처럼, 폼 나게. 하지만 아무 것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현관 신발장 위에 놓인 헤드폰이 눈에 띄었다. 그것도 상자에 담으려고 하는데, 그 순간 나츠키가 입을 열었다.

 

-그냥 거기 두고 가. 내가 바라보게…….

 

……어째서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말이 생각나는 걸까.


(ㅇㅂㄹ여행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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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는 일개 희극을 벌이고 있었던 셈이다. 사랑의 희롱, 곧 사라져버리는 오해, 짓궂으나 인자한 장난, 상냥한 꾸지람, 애정의 안달, 다정한 은폐와 열정 등.

(사르트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