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 데레애니 7화와 8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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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봤을 때는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휴대폰에 달려 있는 고양이 모양 스트랩이 아니었다면 의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일 오후 퇴근길의 혼잡한 전철 안에서, 혼다 미오의 시선은 조금 전부터 그 휴대폰을 들고 있는 여학생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전철이 멈추자 휴대폰 줄이 흔들리더니 이번 역에서 내리는 인파에 섞여들었다. 미오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 뒤를 따라갔다. 자신이 내릴 역은 아직 몇 정거장이나 남았는데도 말이다.
전철 밖에도 사람이 붐볐기 때문에 상대를 놓쳤나 싶어 불안하게 주위를 살폈으나,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그 학생을 다시 찾아낼 수 있었다. 한 번 어떤 대상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바로 빠져든다는 게 미오의 장점이었다. 그녀는 다리에 힘을 주고 사람들 틈에 끼어 천천히 목표를 향해 다가갔다. 상대는 휴대폰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어 누군가 자신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하긴 안 그래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선 알기 힘들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역 안의 환한 불빛 아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얼굴이 더 드러나 보였다. 붉은 테 안경과 단정한 교복 차림이 익숙한 인상을 감추고 있긴 했지만, 미오는 이제 거의 확신을 가지고 그녀의 뒤에 바짝 붙어 서서 입을 열었다.
“미쿠냥……?”
“후냑?!”
이상한 비명소리를 지르며 여학생은 순식간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미오를 보자 눈이 튀어나올 만큼 커졌다.
“미, 미오?! 여기서 뭐하는 거냥?!”
“아니, 난 그냥 집에 가는 중이었는데, 네가 보이길래…….”
미오는 상대가 미쿠라는 걸 알고도 여전히 얼떨떨한 듯이 말했다.
“그런데, 정말 눈치 채기 힘들더라. 나, 사람 얼굴 기억하는 거 특기인데도 말이야- 굉장한 변장이네! 미쿠냥이 아니라 마에카와 씨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
“그건 또 뭔 소리냥! 아무튼 왜-”
잔뜩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던 미쿠는 문득 말을 멈추고, 자신들이 계단 바로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녀들을 못마땅한 듯 힐끔거렸다. 미쿠는 화악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모습일 때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은 익숙하지 못했다.
“이, 일단 이 쪽으로 와라냥!”
“어? 아, 잠깐-”
미쿠는 미오의 손을 붙잡고 계단 쪽으로 끌다시피 하며 올라갔다. 역 개찰구를 통과하고 지상으로 나오자 그제야 인파가 줄어들어 숨이 탁 트였다. 미쿠가 한숨 돌리고 있는 사이 미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 역 밖으로 나와 버렸네. 모르는 곳인데…….”
“그럼 왜 전철에서 내린 거냥-?”
미쿠가 홱 고개를 돌려 미오 쪽을 보고 외치다시피 물었다.
“그거야, 말했잖아. 네가 보이니까…….”
미오는 말하다 말고 잠시 주춤했다.
“…인사를… 하고 싶어서.”
“하아? 무슨 소리냥. 아까 사무소에서도 인사했으면서.”
미쿠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미오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하하, 그러네……. 그런데 미쿠냥, 웬일로 교복 차림이야? 그리고 회사 기숙사로 갈 땐 이 전철 타지 않잖아.”
“……어쩔 수 없었다냥. 오늘은 학교가 늦게 끝나서 바로 왔고, 기숙사로 가기 전에 들릴 곳이 있어서……. 시간이 있으면 역 화장실에서 갈아입곤 하는데.”
미쿠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응? 어째서?”
“당연한 거 아니냥! 이런 모습은 별로 사무소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기도 하고- 어, 어쨌든 지금 미쿠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니잖냥! 미오는 미쿠한테 무슨 볼 일이라도 있는 거냥?”
미쿠가 씩씩거리는 걸 보자 미오는 이상하게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평소처럼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있으니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 일이 있기 전처럼…….
“……응. 단둘이 얘기한 적은 별로 없잖아.”
“……뭐?”
미쿠는 미오가 어쩐지 평소와 다른 것을 느끼고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미오는 곧 활기차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집에 가기 전까지 아직 시간 좀 있으니까, 같이 어울리지 않을래? 미쿠냥이 볼 일 있다는 곳은 어디야?”
“……멋대로 정하고 있다냥.”
미쿠는 왠지 기운이 빠져서 작게 중얼거리다가,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는 미오를 보자 어쩔 수 없이 피식 따라 웃어버렸다. 미오와 있으면 언제나 이런 식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휘둘리고 있고, 시도 때도 없이 츳코미를 거느라 바쁘다. 사실 누군가에게 츳코미 거는 걸 꽤 좋아하긴 했다. 미오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여긴……?”
“멍 하니 서있지 말고 들어와라냥.”
미쿠의 말에 미오는 정신을 차리고 얼른 그녀의 뒤를 따라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미쿠는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면서 설명했다.
“미쿠가 항상 고양이귀나 장갑, 꼬리 등을 사는 곳이다냥. 물론 고양이 말고도 다른 동물 아이템도 많고. 얼마 전에 예약한 새 고양이귀가 들어왔다고 해서 그걸 가지러 온 거다냥. 여긴 꽤 인기가 많아서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냥-”
“호오, 그래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온 거구나……. 그런데, 새 고양이귀라니, 미쿠냥은 이미 고양이귀 많이 가지고 있잖아?”
“전부 다 똑같은 고양이귀가 아니다냥! 이번에 주문한 건 감도도 움직임도 완전히 다르다고. 그리고 고양이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다, 냥-!”
“아, 알았어. 알았어!”
마치 진짜 고양이처럼 몸을 뻣뻣이 하고 성질을 내는 미쿠에게 미오는 순순히 손을 들었다. 가게 안은 생각보다 굉장했다. 각종 동물 귀, 장갑이나 꼬리는 물론이고 완전히 변장이 가능한 동물옷이 사방에 걸려 있었다. 동물뿐만 아니라 여러 식물이나 괴물, 요정 의상도 보이는 걸 보면 코스프레 아이템 전용 가게인가 싶었다. 문득 미쿠 말고도 이 가게를 이용하는 아이돌이 몇 명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산 끝났다냥. 이제 집에 갈 거지?”
미쿠는 맘에 드는 물건을 손에 넣은 듯 만족스럽게 미소를 띠고 미오를 불렀다. 미오는 그런 미쿠를 보자 기분이 좋아져서 역시 웃으면서 말했다.
“응, 같이 가자.”
“미쿠는 미오랑 반대 방향이니까 역까지밖에 같이 못 간다냥.”
“뭐, 어때-”
미오는 그렇게 말하며 미쿠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다른 한 팔로 팔짱을 꼈다. 미쿠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미오가 이런 식으로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하는 건 평소에도 있는 일이었지만, 사무소 안에서가 아닌, 그러니까 일로써 만나는 것이 아닌 밖에서 이러는 건 꽤나 대담하게 생각되었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신호등 앞까지 걸어가며 시답잖은 대화를 계속 나누었다.
“미쿠냥은 고양이귀에 관해선 정말 진지하구나-”
“당연하다냥! 고양이귀는 미쿠가 아이돌 일을 계속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아이템이니까. 미쿠는 자신을 굽히지 않아!”
“오오, 왠지 멋진걸-!”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역 앞에 도착하자 미오는 미쿠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미쿠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미오가 아무 말이 없자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바람에 신호가 바뀌어도 몇 초 동안 가만히 있다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미오를 돌아보며 말했다.
“미, 미오! 건너야-”
그 순간 미오가 팔을 뻗어 미쿠의 소매를 꽉 붙잡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미쿠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기 때문에 화가 나서 뭐라고 쏘아붙이려 미오를 쳐다봤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잠시 뒤, 이번엔 미쿠가 미오의 소매를 붙잡고 인도 뒤편에 있는 벤치로 데려가 앉혔다. 미오는 순순히 앉았지만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았다. 미쿠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미오……나한테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거냥?”
미오가 대답이 없자 미쿠가 다시 말했다.
“왜 전철에서 날 보고 쫓아온 거냥……? 오늘 정말 이상하다냥.”
그러자 미오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그 눈빛을 보고 미쿠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평소와 달리 너무나 진지했기 때문이다.
“저기 말야, 미쿠냥.”
미오가 천천히 말했다.
“내가……아이돌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어떻게 생각했어?”
“…….”
미쿠는 순간적으로 아무 말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 했고 듣고 싶지도 않은 말이었다. 미오가 구태여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낼 줄은 몰랐다. 그 일이 있은 지 바로 얼마 되지도 않았던 것이다.
미쿠는 입술을 달싹이며 뭐라도 말하려 애썼다.
“……왜 그런 걸 묻는 거냥…?”
“……나, 모두에게 사과하고 다시 돌아왔지만, 왠지 미쿠냥한테는 따로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미오가 손가락을 꼬며 말했다.
“……왠지, 너는 아직 화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미쿠는 미오의 불안해하는 표정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동안이나 나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평소에 고민이 전혀 없어 보이는 미오였기 때문에 잘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묘하게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런 기분은 금세 사라졌다.
미쿠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딱히, 화나지 않았다냥.”
“저, 정말? 하지만-”
“분명히, 그 일이 일어났을 땐, 미오는 프로 실격이라고 생각했다냥.”
미오가 입을 벌리고 미쿠를 빤히 쳐다보았지만, 미쿠는 미오를 보지 않은 채 시선을 어딘가 멀리 두고 말을 계속했다. 말투와 표정만큼이나 말하는 내용은 단호했다.
“……미쿠네보다 먼저 데뷔했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데뷔하고 싶어했는지 알면서, 미오가 그만둔다고 했을 때는 솔직히 좀 화도 났다냥. 관객이 적은 게 어때서? 미쿠는 어떤 작은 무대에라도 설 수 있다면 관객분들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거다냥. 미쿠는 일에는 언제나 진지하니까-”
미오는 미쿠의 말을 듣는 사이 얼굴이 점점 붉어져갔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떨어트렸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날카롭게 가슴 한구석을 찌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미쿠는 말을 멈추고 잠시 숨을 들이키더니, 미오를 바라보았다.
“…미오가 린, 우즈키와 같이 미카쨩의 백댄서로 무대에 섰을 때도, 미나미네와 같이 CD데뷔를 했을 때도… 미쿠가 아이돌 승부를 걸 때마다 미오는 언제나 잘 받아줬다냥. 뭐, 미쿠가 매번 지긴 했지만… 솔직히 좀 즐거웠다냥.”
“아…아니, 난 그냥 재밌어서 했던 건데.”
미오의 말에 미쿠는 가늘게 고양이눈을 하고 뚱한 표정을 지었다.
“미오는 정말 눈치가 없다냥….”
“미, 미안! 계속해.”
“……어쨌든, 미쿠랑 미오는 각자 방식은 달라도 아이돌을 좋아하는 마음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냥. 그러니까 괴로워하기도 하고……”
미쿠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미쿠도 한 번 실수를 한 적이 있으니까, 미오가 흔들렸을 때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냥. 모두에게 폐를 끼쳤다고, 창피하다고 해서… 도망치면 안 된다는 것도, 미쿠는 잘 아니까. 다시 돌아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아니까…….”
“미쿠냥…….”
미오는 앉은 채로 미쿠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평소에 알고 있는 모습과 달라서인지, 아니면 지금 상황 때문인지 그녀는 굉장히 인상적으로 보였다. 미오는 두 손을 살며시 움켜쥐었다.
“……그래서 미오가 다시 돌아와줘서 정말 기뻤다냥! 지금은, 미오랑 같이 이 프로젝트에서 계속 아이돌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냥.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나한테 신경 쓸 거 없다냥! 알겠지?”
말을 마치고 미쿠는 생긋 웃었다. 미오도 따라 웃으려 했지만,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눈에 힘을 주고 대답했다.
“……응, 고마워. 미쿠냥.”
“……미오가 그렇게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냥. 의외로 섬세한 구석이 있다냥~”
미쿠가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미오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미쿠의 손을 덥석 잡더니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고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눈이나 손을 잠시라도 떼면 말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 미쿠냥이 데뷔하게 되면 첫 번째 무대는 꼭 보러 갈게. 시마무랑 시부린도 불러서… 꼭이야!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왠지 좀 부끄럽지만, 알겠다냥.”
미쿠가 뺨을 붉히며 말했다.
“이, 이러다 정말 늦겠다냥!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건데?”
“아, 그렇지!”
미오는 싱글거리며 미쿠의 손을 꼭 붙잡은 채로 횡단보도를 향해 뛰어갔다. 마침 파란불이 깜박거리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달렸다. 느닷없이 같이 뛰게 된 미쿠는 건너편 역에 도착하자마자 빽 소릴 질렀다.
“무슨 짓이냥, 위험하게!”
“에헤헤- 미안, 어쩐지 멈출 수 없어서!”
미오의 해맑은 웃음에 미쿠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또 다시 따라 웃고 말았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미오와 함께 있으면, 휘둘려지기만 하고, 그 사이에 즐겁게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내심 좋아하고 있다고, 미오에겐 절대로 말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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