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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미키-늦잠

※제 치하미키는 기본적으로 극장판 이후 두 사람이 뉴욕에서 동거하며 섹스 파트너가 된다는(...) 어마어마하게 개인적인 동인 설정을 전제로 합니다, 이 점 유의하여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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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가 눈을 떴을 때, 치하야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그건 꽤나 드문 일이었기에 미키는 조금 놀라서 누워 있는 치하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같은 침대를 쓰게 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대개는 둘 중 누가 먼저 잠들든 치하야가 먼저 눈을 떴고, 그녀가 씻고 아침 준비까지 끝냈을 때쯤 미키는 그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미키는 침대 위에 늘 혼자였다. 그것이 좀 아쉽긴 했지만, 치하야의 일관된 일상을 깨고 싶지 않아 미키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이 일찍 일어나고 싶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활리듬은 그렇게 전혀 다르면서도 어긋나지 않고 조용히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그 리듬이 처음으로 깨진 것을 보자 미키는 꽤나 흥미로웠다.

고개를 들어 침대 머리맡의 시계를 보니 아침 열 시를 훨씬 넘어가고 있었다. 치하야가 이 시간까지 늦잠을 잔다는 게 놀라웠다. 그러고 보니 어제 밤늦게 몹시 피곤해 보이는 기색으로 들어오더니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던 것이 떠올랐다. 새로운 레코딩 작업으로 내내 바쁘다가 오늘부터 당분간 쉰다는 말도 얼핏 들었던 것 같다. 미키는 순수한 의도로 치하야의 옷을 벗겨주었고, 잠결에 무의식적으로 서로의 몸을 만졌지만 그 이상의 행위는 없었다. 미키는 새삼스럽게 처음 본다는 듯 치하야의 알몸을 바라보았다. 밝을 때도 본 적은 있지만, 치하야가 잠들어 있을 때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사실에 은밀한 즐거움이 느껴졌다.

치하야는 등을 위로 하고 엎드린 채 누워 있었다. 미키는 손을 뻗어 반쯤 드러난 치하야의 옆얼굴을 가린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치하야의 눈은 먼지 하나 들어갈 틈새도 없이 단호히 감겨 있었다. 기다란 속눈썹이 뺨 위로 처져 내려온 채였고 그 아래는 얼굴을 베고 있는 팔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미키는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 치하야의 머리카락에서부터 어깨, 등을 쓰다듬듯 훑어 내려갔다. 치하야를 깨우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대로 계속 바라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치하야의 피부는 전보다 약간 탄 것 같은 색을 띠었다. 날이 갈수록 햇빛이 점점 강해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미키는 곧게 뻗어 있는 치하야의 등뼈를 손가락으로 만져 보았다. 등 전체가 살가죽 아래로 단단한 뼈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가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미키는 생각했다. 섹스를 할 때마다 피부 아래의 그 딱딱한 뼈가 격하게 몸에 부딪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그 고통을 쾌감으로 바꾼다는 사실을 치하야는 절대로 모를 것이다.

……으음.”

미키의 손가락이 치하야의 골반을 향해 내려갈 때쯤 치하야가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미키는 손을 들어 올리고 장난스런 미소를 지은 채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잘 잤어? 치하야 씨.”

미키……?”

치하야는 눈을 세게 찌푸렸다. 그녀 역시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당황한 모양이었다.

지금 몇 시야……?”

오전 열 시 반.”

…….”

치하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베개로 고개를 파묻었다.

……왜 그렇게 된 거지.”

치하야가 자책하듯 중얼거렸다. 미키는 그것이 보기 싫다고 생각했다.

치하야 씨, 오늘부터 당분간 쉰다고 하지 않았어? 미키적으로는, 그럴 땐 조금 늦잠을 자도 괜찮다고 생각한달까.”

…….”

치하야는 대답하지 않고 있다가 잠시 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허리 아래를 가리고 있던 얇은 이불이 스르륵 떨어지며 앙상한 하반신을 드러냈다. 그녀는 그것에 개의치 않고 알몸인 그대로 부엌으로 향했다. 미키는 치하야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을 아무렇게나 몸에 걸치는 것을 침대 위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치하야는 옷을 다 입은 후,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미키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잘 잤어? 미키.”

빨리도 물어본다는 거야.”

미키는 그렇게 말하고 혀를 쏙 내밀어 보였다. 치하야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사무적인 말투로 말을 이었다.

아침은? 먹었어?”

아니, 미키도 방금 일어났어.”

뭐 먹을래?”

아무거나.”

시리얼이 조금 남아있을 거야.”

미키는 밥이 좋은데.”

아무거나, 라며.”

그럼 위에 젤리 뿌려줘. 아몬드도.”

알았어.”

테니스를 치듯 툭툭 대화가 오갔다. 미키는 치하야가 시리얼을 꺼내 그릇에 붓고, 우유와 설탕, , 젤리와 각종 견과류를 꺼내 간단한 아침을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조금 늦은 시각이라는 걸 빼면 평소와 똑같은 풍경이었다. 같이 살게 된 후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언제나 치하야였다. 치하야는 왠지 모르게 그것을 의무라고까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미키는 매일 아침 치하야가 식사를 차리는 걸 볼 때마다 묘한 평화가 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교회의 종을 울려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 됐어.”

치하야가 식탁 위에 시리얼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미키는 머릿속의 종소리를 떨쳐버리려는 듯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미키는 침대에서 먹고 싶은 거야, 갖고 와줘.”

자신이 듣기에도 어린애가 칭얼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치하야는 미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쉬고 그릇 두 개를 쟁반에 담아 침대로 가져왔다. 미키는 여전히 알몸인 채 일어나 그릇을 받았다. 두 사람은 조용히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잠시 동안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럼, 오늘은 뭘 할 거야, 치하야 씨?”

미키가 침묵을 깨고 물었다.

……글쎄.”

치하야는 스푼을 쟁반 위에 내려놓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일이 없는 날엔, 뭘 하면 좋을까.”

치하야 씨는 그런 것도 혼자서 생각 못 하는 거야?”

미키는 비웃는다기보단 순수하게 재밌어하는 투로 말했다. 치하야의 두 볼이 약간 붉어졌다.

그렇지 않아, 나도…….”

치하야는 미키에게 말하다 말고 턱에 손을 대고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사진을 찍으러 갈까.”

사진?”

스튜디오에 갈 때마다 어떤 공원을 지나치는데, 사진 찍기 좋을 것처럼 보였거든.”

치하야는 그렇게 말하고 창밖을 쳐다보았다.

마침 오늘은 날씨도 좋으니까.”

흐응.”

미키는 무관심한 건지 아닌 건지 모를 애매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시리얼을 먹는 것에 집중했다. 치하야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미키가 어떤 반응을 보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일일이 알아내려고 한다면, 거기에 한평생을 다 써도 모자랄 것이다.

미키가 숟가락을 내려놓는 것을 본 치하야는 그릇이 담긴 쟁반을 치웠다. 그녀가 설거지를 끝내고 돌아서자 어느새 옷을 갖춰 입은 미키가 웃음을 지은 채 서있었다.

치하야 씨, 미키도 같이 가도 돼?”

……마음대로 해.”

치하야는 이미 예상했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미키가 빙긋 웃었다.

저기 치하야 씨, 미키는 사실 쇼핑이 하러 가고 싶어. 치하야 씨한테 어울릴 만한 옷을 얼마 전에 시내상점가에서 봤거든.”

미키는 약간 들떠 있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옷 필요 없는데.”

그럼 미키가 사줄래. 햇빛을 가려줄만한 걸로. 치하야 씨, 자외선 차단제 같은 것도 없지? 그리고 있잖아, 더 살이 찔 만한 시리얼을 사야겠어. , 굉장히 맛있는 누텔라 크레페를 파는 가게를 아는데-”

…….”

치하야가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미키는 무시했다.

……그리고 또, 얼마 전에 시작한 뮤지컬도 보러 가고 싶고…….”

하루에 그걸 다 할 순 없어.”

치하야가 미키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그럼 내일도 또 놀면 되지.”

미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미키, 난 여기 놀러온 게…….”

미키도 안다는 거야.”

치하야는 입을 다물었다. 미키의 목소리는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힘이 실려 있었고 표정도 터무니없이 진지했다. 단순히 놀러가자는 얘기로는 들리지 않았다. 치하야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자 미키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그녀는 춤을 추듯 몸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여기엔 치하야 씨랑 미키밖에 없잖아. 미키는 말이지, 치하야 씨랑 가능한 많은 걸 해보고 싶다는 거야.”

미키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정지하듯 동작을 멈추고, 어깨 너머로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미키의 사진을 얼마든지 찍어도 되니까.”

치하야는 대답 대신 미키의 눈을 정면으로 강하게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하지만 너무 많이 노는 건 안 돼.”

아핫, 고맙단 거야, 치하야 씨!”

미키는 다시 평소처럼 가볍게 웃으며 치하야의 목을 끌어안았다. 치하야는 씻고, 옷을 갈아입고, 카메라와 지갑 등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키가 중얼거렸다.

……치하야 씨가 매일 늦잠을 잔다면 좋을 텐데.”

……?”

으응, 아무것도.”

두 사람이 나란히 집을 나서자 현관문이 큰소리를 내며 닫혔다. 어딘가의 교회 종소리만이 텅 빈 집 안을 채우듯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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