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거 도와주기로 해서 정말 고마워, 하루카.”
“아니야, 이 정도 가지고 뭘.”
하루카는 앞치마 끈을 허리 뒤로 질끈 동여매며 밝은 얼굴로 말했다.
“나야말로 요리하는 거 좋아하니까, 마코토랑 같이 할 수 있어서 기뻐.”
그 말을 듣고 마코토는 편한 미소를 지었다. 둘은 하루카의 집 주방에서 요리할 준비를 갖춘 채 서 있었다. 계기는 며칠 전 사무소에서였다. 모 요리 방송-정확히는 요리만 하는 게 아니라 요리를 하기 위해 몸을 사정없이 굴려야 하는 버라이어티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로 한 마코토가, 자신은 요리를 전혀 못 한다며 걱정하자 하루카가 선뜻 도와주겠다고 말을 꺼낸 것이다. 사실 마코토는 하루카가 그렇게 말해주길 내심 기대하고 그녀에게 말을 했던 거였다. 하루카의 요리 실력은 사무소 내에서 톱 수준이기도 하고(주로 과자류에 특화되어 있긴 하지만), 하루카가 얼마 전에 새로 샀다며 보여준 프릴 달린 앞치마가 무척이나 자신의 취향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난 이런 거 통 익숙하지가 않거든.”
마코토가 주방에 가득한 요리 도구 중 하나를 집어 들며 곤란한 듯이 말했다. 그 모습을 보던 하루카가 물었다.
“마코토는 집에서 요리해본 적 없어?”
“으음… 우리 집은 아버지가 엄하셔서, 나는 부엌 근처에도 못 가게 하셨어. 요리는 여자애들이나 하는 거라면서.”
“……마코토, 여자애잖아?”
“……응? 아, 그렇지! 그, 그러니까 내 말은, 나를 남자애처럼 키우고 싶어 하셨으니까!”
하루카의 말에 마코토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하루카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미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마코토 역시 어색하게 웃다가 조금 뒤 푹 한숨을 내쉬었다.
“아…… 나도 모르게 내가 남자인 것처럼 말할 때가 있다니까. 진짜 아버지한테 세뇌당한 것 같아.”
“아, 그렇지. 오늘 요리한 거 아버님께도 좀 갖다 드리면 어때? 맛있게 되면 아버님도 마코토를 좀 다시 보시게 될지도 모르잖아!”
하루카가 손뼉을 탁 치며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마코토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말없이 하루카를 쳐다보다 하루카답네, 하며 웃었다.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르니 저렇게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거다. 아니, 하루카는 원래 보통 이상으로 긍정적인 아이이긴 하지만.
“……좋아, 그럼 힘내볼까!”
“응, 열심히 하자!”
두 사람은 기운차게 외치며 팔을 걷어붙였다. 하루카는 우선 만들기로 한 메뉴와 레시피가 쓰여 있는 메모를 다시 확인한 후, 마코토를 향해 말했다.
“음, 그럼 마코토, 일단 이 양파들 좀 썰어줄래? 잠깐 내가 먼저 시범 보여줄게.”
“응.”
하루카는 한 손 손가락을 오므려 양파 한 쪽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칼을 쥔 채 조심스럽게 썰어 보였다. 마코토는 그걸 지켜보며 익숙한 손놀림에 감탄했다.
“잘 한다, 하루카.”
“헤헤, 실은 나도 엄청 연습한 거야. 자, 이제 마코토가 해봐. 난 소스 준비하고 있을게.”
“응.”
마코토는 하루카에게서 칼을 받아들고 하루카가 한 대로 손을 오므린 채 양파를 잡고 썰기 시작했다. 긴장해서 그런지 손이 약간 떨렸다.
“아얏!”
“왜 그래? 눈이 많이 매워?”
마코토의 짧은 비명에 다른 쪽을 보고 있던 하루카가 급히 몸을 돌리며 물었다. 마코토는 양파를 잡고 있던 손의 집게손가락을 단단히 쥔 채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 손가락을 조금 베어서…… 나도 참, 무슨 클리셰도 아니고…….”
마코토는 핏방울이 조금씩 솟아나고 있는 손가락을 입에 물며 웃었다. 정말로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요리 초보의 흔한 실수를 그대로 해버린 게 어이가 없고 창피했다. 하루카도 웃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마코토보다 더 당황한 얼굴로 외쳤다.
“어떡해, 괜찮아? 잠깐, 핥으면 안 돼! 반창고 가져올게!”
하루카는 허둥지둥 어딘가로 달려가더니 재빠르게 구급약 세트를 가져왔다. 그리고 마코토의 손을 붙잡고 소독하고, 솜으로 닦고, 반창고를 붙여 주었다. 정작 다친 당사자인 마코토는 태연했다. 사실은 누가 자신의 상처에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드문 일이라 약간 무안하기까지 했다. 마코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뭐 이렇게까지…… 이런 건 그냥 핥으면 나아. 난 어릴 때부터 이 정도 다치는 건 일상다반사였는걸. 그래서 자연 치유력이 좋다고나 할까…….”
말을 하면서 실없이 웃던 마코토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하루카는 여전히 마코토의 손가락을 붙잡은 채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 저기, 하루카……?”
“……그러지 마……. 그렇게, 다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지 마…….”
하루카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코토는 반창고를 한 손가락에 하루카가 점점 힘을 주고 있다는 걸 느꼈지만, 그보다는 그녀의 울 것 같은 표정에 놀라고 말았다.
“……아, 저기, 미안해, 하루카……. 그러니까… 나, 나 엄청 아파! 으아아아! 이러다 죽는 거 아냐? 어떡하지, 하루카!”
마코토는 재빨리 하루카의 손에서 손가락을 빼들더니 그것을 꽉 붙잡고 오버하며 엄살을 떨었다. 하루카는 약간 놀란 얼굴로 잠시 그런 마코토를 쳐다보다, 곧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손가락 좀 베인 걸로 안 죽어.”
“아하하, 그렇겠지…….”
마코토는 그냥 가만히 있을걸 그랬다는 생각을 하며 빨개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쨌든, 하루카가 다시 웃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내 생각엔, 마코토가 세뇌당한 건 남자니 여자니 하는 것 말고도 안 좋은 게 많은 것 같아.”
하루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자애는 좀 더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구.”
“……응, 그럴게.”
마코토는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어 대답했다. 그리고 멋쩍은 듯이 웃었다.
“……기왕 다치는 거에 익숙해질 거라면, 무술이 아니라 요리하다 다치는 쪽이 좋았을걸.”
“그러게 말이야.”
하루카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다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입술 밑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이랑 반대네.”
“응?”
“왜, 저번에 내가 댄스 레슨 받다 넘어져서 발목을 삐었을 땐, 마코토가 상처를 봐주었잖아.”
“아아, 그야 난 도장에서 자라다시피 했으니까 그런 상처에 익숙해서.”
“나도 요리 자주 해봐서 이런 상처에 익숙해.”
하루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그렇게 서로 다칠 일이 생기면, 서로 봐주면 되겠다. 그렇지?”
그 말에 마코토는 잠시 말없이 하루카를 바라보다 따라 웃었다. 정말로 하루카답네, 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하며 대답했다.
“……응, 그래.”
그리고 짐짓 짓궂은 말투로 말했다.
“그치만 내가 요리를 하는 것보다 하루카가 넘어지는 게 더 자주 있는 일이니까, 내가 손해 보는 거 아냐?”
“에엑? 너무해-”
“농담이야, 농담!”
마코토가 웃으면서 말하자, 잠깐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던 하루카도 곧 다시 웃음을 지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외쳤다.
“아, 요리, 계속 해야지!”
“응, 응. 미안, 나 때문에 시간 잡아먹어서.”
“괜찮아, 괜찮아. 대신 이제부터 안 다치도록 조심해, 알았지?”
하루카는 씨익 웃으며 그렇게 말하곤 하던 일을 마저 하기 위해 조리대 앞으로 돌아갔다. 마코토도 썰던 양파가 남아 있는 도마 앞으로 가서 칼을 쥐다, 문득 반창고를 맨 손가락을 천천히 쓰다듬어 보았다.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의 달콤한 미소가 얼굴 위로 천천히 번져갔다. 그녀는 뒤돌아 있는 하루카에게 안 들리게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마워, 하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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