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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writing

료나츠 낙서

마츠나가 료 1인칭 시점. 료 과거 + 엔진 커뮤 4화 날조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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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매달린 종이 딸랑거리며 흔들린다. 그건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헤드폰을 내려놓고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앞으로 갔다. 하늘거리는 치맛자락이 거슬린다.

노크 소리가 두어 번 들리더니 방문이 열린다. 들어온 사람은 어머니였다.

-.

그녀는 평온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뭘 하고 있었니?

-그냥, 음악을 듣고 있었어요.

나는 책상 위에 늘어놓은 클래식 CD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내일부터 피아노 레슨 받아야 하는 거 알지? 아주 유명한 선생님이니까, 이번엔 쉽게 그만두지 말고.

-…….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니는 만족한 듯 웃으며 방을 나갔다. 나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앉았다. 이불 아래에 감춰둔 헤드폰과 좋아하는 밴드의 CD를 잠시 바라보았다.

-뭘 하고 있는 거람.

소리 내어 그렇게 중얼거리자 더욱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그대로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조금 전까지 듣고 있던 노래의 리듬이 아직 귓가에 맴돌아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록 음악을 즐겨 듣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치 오래 전부터 들었던 것처럼 가슴 속에 스며들었다. 나는 그 소리를 떨쳐보려 애쓰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이미 너무나 확고하게 외치고 있었다. 듣는 것만이 아니라, 제대로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 기타를 부서질 듯 세게 쥐고, 무대가 떠나갈 듯 소리를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내 음악 취향을 클래식 교향곡만 들으며 살아오신 부모님이 이해하실 수 있을 리 없었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아니 태교 때부터 그런 음악만 들으며 자랐다. 싫은 건 아니지만, 그건 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내가 그런 음악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될 거라고 단단히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계속해서 학원에 보내거나 레슨을 받게 했으니까.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아무 음악이나 찾아 듣다가 발견하게 된 것이 바로 이었다.

덕분에 요즘은 계속 기분이 무료하고 뒤숭숭하다. 이럴 땐 취미대로 영화라도 보러 가고 싶지만, 영화 취향도 마이너해서 같이 볼 수 있는 친구조차 없었다. 일단은 온실 속 아가씨들이 모이는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으니까. 물론 혼자라고 영화를 못 보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역시 영화를 보고 나면 감상을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으면 했다. 그게 설사 고어 또는 호러 류의 스플래터 영화라고 해도.

인터넷은 거의 하지 않는다. 온라인 속 관계라는 거 별로 신뢰가 안 가기도 하고.

그러니까 내 이런 모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장을 열었다. 온통 얌전한 아가씨 풍의 원피스나 블라우스 가운데 어울리지 않는 짧은 핫팬츠와 검은 나시 티가 섞여 있었다. 얼마 전에 혼자 시내에 쇼핑을 가서 사온 옷이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회색 볼 캡을 깊게 눌러쓴 후 방을 나왔다.

가끔 이렇게 다른 사람인 척 시내로 나가 혼자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보는 것이,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소소한 일탈이라면 일탈이었다. 내 나름의 저항이라고나 할까. 부모에게나 남들에게나 솔직하게 취향을 밝힐 용기는 없었다. 그냥 가끔 이렇게 혼자 즐길 수 있는 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거리를 쏘다니다 기타 샵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쇼윈도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런 고민을 할 때마다 늘 가슴이 답답했다.

저기 봐, 저기.”

어디?”

가운데 보컬-”

, 저 리젠트 머리 한 사람?”

뒤에서 호들갑을 떨며 지나가는 여자애들의 수다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돌아서 그녀들의 시선을 쫓았다. 기타 사운드를 체크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더니 조금 떨어진 곳에 작게 마련된 야외무대석이 눈에 들어왔다. 이 거리는 아마추어 밴드들의 길거리 공연이 종종 벌어지곤 해서 그것들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곤 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쪽을 향해 걸어갔다. 곳곳에 십대 여자애들의 잔뜩 흥분한 비명소리가 터질 듯 말 듯 한 팽팽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인기 있는 밴드인가? 나는 무대 위를 쳐다보았다. 가운데에 기타를 들고 서 있는 리드 보컬은 앞머리를 리젠트로 올려 세운 여자였다. 성숙해 보이는 분위기였지만 왠지 외모 자체는 앳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나이가 아닐까.

기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그녀는 만족스런 소리가 나온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살짝 감탄했다. 저 여자, 누구든 홀릴 것 같은 눈을 하고 있네.

드럼이 울리고 기타와 베이스, 키보드가 연주를 시작했다. 동시에 보컬의 살짝 허스키하고 뜨거운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나는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 가운데 서서 그들의 공연을 지켜보았다. 사실 실력 자체는 여타 다른 아마추어 밴드들과 다를 것 없이 평범했다. 메인 보컬 특유의 강렬한 분위기가 특별했다면 특별하긴 했지만. 노래는 약간 어설픈 자작곡이기도 했고 굉장히 유명한 팝송을 어레인지한 버전이 나오기도 했다. ‘잘 한다고는 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특별하진 않았다.

록 음악은 본래 뜨겁게, 터져 나오는 것이다. 머리가 울릴 듯 크게, 마치 비명소리 같기도 하고 고함 소리 같기도 하다. 어딘가를 향해 외치고 싶어서 터질 듯한 마음, 영혼- 그 자체를 담는 음악이라고 느꼈다. 마치 지금의 나처럼.

분명 그런 음악인데, 왜 그 노래 어딘가에서 이토록 슬픔이 느껴지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얘기는 지금까지 누구한테 한 적이 없네.”

그래? ?”

글쎄…… 남이 들으면 웃을 것 같기도 하고. 지금 내 이미지랑 어울리지도 않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잠시 말없이 나츠키를 바라보았다.

……너랑 얘기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별 말이 다 나오는 것 같아.”

아하하. 영광인데요, 아가씨.”

나츠키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나쁜 의도로 놀리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았고 딱히 기분이 상한 것도 아니지만, 묘하게 얄밉다고 느꼈다.

또래보다 어른스러워 보이는 그녀가 사실은 타고난 장난기를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 점이 치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사무소에 들어오기 전에, 네 노래를 들은 적이 있거든. 그래서일까.”

헤에- 이거 쑥스러운데, 내가 그렇게 유명했나?”

물론 아니지, 그냥 우연히 본 거야.”

빈 말은 안 하는구나.”

나는 못 들은 척 말을 넘겼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너도 나도 아이돌이 되어서, 같은 유닛으로 활동하게도 되고, 세상 참 모를 일이네.”

난 기뻐. 전부터 료의 노래를 좋아했거든.”

저런 말을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태연히 말할 수 있는 점도 그녀의 대단한 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괜히 오기가 들어서 나도 태연한 척 말을 돌려주었다.

그거 고맙네, 나도 나츠키의 무대를 좋아해. 뭐랄까, 쇼맨십이랄까- 팬 서비스 같은 거. 아이돌답잖아.”

난 내가 아이돌답다는 생각해본 적 없는데.”

나츠키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나보단 나아.”

글쎄. 요즘은 별로 그렇지 않다고 느꼈어.”

성장했다는 거겠지, 아이돌로서. 좀 복잡한 기분이긴 하지만.”

아아, 알 것 같아.”

나츠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눈빛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는 그 눈빛에서 신중함과 동시에 씌인 의심을 읽어냈다.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내가 웃으며 말했다. 나츠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좋아한다니까, 네 노래.”

어째서일까, 또 다시 슬픔이 사무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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