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 라이브 코믹스(겟산마스) 13화 앞부분 내용을 날조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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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사…. 잠깐 얘기 좀 하자, 따라와.”
줄리아가 그 말을 꺼내자, 누군가 에어컨이라도 튼 듯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무거운 공기 속에 누구 한 사람 선뜻 말을 꺼내지 못 했다. 마치 무기처럼 날카로운 그 말의 공격 대상이 된 츠바사는 시즈카 뒤로 가 몸을 움츠렸다. 줄리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겁이 났다. 사실 평소에도 자신에게 늘 화를 내는 줄리아긴 하지만, 저렇게까지 화가 난 모습은 처음 본다. 츠바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 줄리아노, 미안해요. 어제 늦게 자버리는 바람에…….”
“됐으니까, 따라 오라고.”
줄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츠바사를 향해 한 걸음 성큼 발을 내디뎠다. 츠바사는 자기도 모르게 꺅, 하고 약한 소리를 지르며 몸을 더욱 깊이 수그렸다. 그녀가 몸을 뒤로 빼려는 순간 줄리아가 순식간에 다가와 팔을 세게 쥐고 끌어당겼다. 츠바사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코앞에 다가온 줄리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어찌나 차가운지, 싸하게 피가 식는 기분이 들었다. 커다란 얼음을 억지로 삼킨 듯 머리가 띵했다.
무섭다. 평소의 줄리아와는 달라……. 무섭다.
“주, 줄리아 씨. 잠깐만요. 아마 츠바사도 무슨 사정이 있어서…….”
평소에 츠바사에게 툭하면 잔소리를 늘어놓던 시즈카가 웬일로 편을 들어주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 정도로 줄리아가 내뿜는 분위기는 매서웠던 것이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시즈카는 당황해서 흡 하고 나머지 말을 삼켰다. 줄리아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미안하지만 시즈카, 이건 우리 두 사람의 문제니까 끼어들지 말아주겠어?”
“……네.”
시즈카는 소리 죽여 대답했다. 미라이는 조금 전부터 안절부절 못 하며 줄리아와 츠바사, 시즈카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옆에 있던 미즈키의 팔을 붙잡고 울상을 지었다.
“미… 미즈키 씨, 어떡하죠?”
“……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항상 무표정에 감정 없는 말투인 미즈키가 척 봐도 곤혹스러운 듯이 말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들어줄 것 같지 않네요.”
줄리아는 츠바사의 팔을 여전히 세게 쥔 채, 열려 있는 문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힘없이 끌려가는 츠바사를 보며 시즈카와 미라이, 미즈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줄리아가 츠바사를 이끌고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마주치는 동료 아이돌들마다 두 사람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무슨 일이냐고 말을 걸었다. 그 때마다 줄리아는 말없이 고개를 젓기만 했고, 츠바사는 고개를 숙인 채 바닥만 보며 걸었다. 사람이 없는 빈 대기실을 찾자 줄리아는 그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함께 들어온 츠바사는 줄리아가 팔을 놓자 잠시 비틀거리다 어정쩡한 자세로 방 한가운데에 섰다. 줄리아는 잠시 동안 닫힌 문을 바라보고 있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츠바사 쪽을 쳐다보았다. 츠바사는 줄리아의 시선을 느끼고 흠칫 몸을 떨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남을 두렵게 의식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츠바사.”
줄리아가 낮게 내리깐 목소리로 츠바사를 불렀다. 츠바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줄리아는 이제 몸을 돌려 완전히 츠바사 쪽을 향한 채 말하기 시작했다.
“……넌 이 일이 장난 같아? 내가 백 코러스를 부탁했을 때, 남의 무대를 무슨 노래방인 듯 말하는 걸 들었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넌 정말 진지함이라곤 조금도 없구나.”
줄리아는 츠바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츠바사는 아무 말 없이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츠바사도 줄리아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거였지만, 츠바사가 그렇게 풀 죽은 모습을 보는 건 줄리아 역시 처음이었다. 그 사실에 줄리아는 왠지 모르게 화가 나서 점점 더 목소리를 높였다.
“왜 가만히 있어? 넌 내가 이렇게 심각하게 화내면서 애들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어야 말을 듣는 거야? 그럼 앞으로도 이렇게 할까? 난 말이야, 처음부터 아이돌이 되려는 생각 같은 건 없었어. 그래도 일단 하게 된 이상 진지하게 임하려고 결심했어. 그렇지 않으면 이 시어터의 다른 모든 녀석들한테 실례일 테니까. 그런데 넌 뭐야? 정말로 아이돌이 되려는 생각이 있긴 한 거야?”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츠바사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눈만 천천히 움직여 줄리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마침내 츠바사가 제대로 반응을 보이자 줄리아는 뱃속에서부터 묘한 희열감을 느꼈다. 그 느낌에 당황해, 더욱 목소리를 높여 거의 소리 지르듯 말하기 시작했다.
“하, 함부로라고?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리허설에 지각한 게 잘 한 짓이란 거냐? 아니, 리허설뿐만이 아니지. 넌 평소 연습에도 지각을 밥 먹듯이 하잖아. 뭘 시켜도 대충대충 설렁설렁, 무슨 아이돌을 즐거운 놀이 하듯. 우린 아직 톱스타는 아니지만, 그래도 엄연히 프로 아이돌이야. 지금 네 태도가 프로라고 할 수 있어?”
줄리아는 말을 하면서 점점 더 화가 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말들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었나 하고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무의식적으로 쌓여왔던 기분들이 지금 말로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잔뜩 흥분하고 있는 줄리아와는 달리, 츠바사는 줄리아의 독설을 듣는 내내 그녀의 시선을 똑바로 받아내며 차가운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줄리아는 이제 아무렇게나 입에서 나오는 대로 외쳤다.
“애초에 네가 내 백 코러스 멤버를 하겠다고 한 것도 이해가 안 가. 자기가 메인이 아니면 싫다고 할 녀석이. 안 그래? 넌 그냥 기분을 풀 곳이 필요했겠지. 그러고도 자기가 재능이 있다고 착각하고 잘난 척 하는 거, 정말 밥맛없어. 나도 들었어. 댄스 오디션 떨어진 거, 미키한테 백댄서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들었다며? 하, 당연하지. 너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줄리아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츠바사가 고개를 치켜들고 줄리아를 뚫어질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커다란 외침이 밀폐된 방 안에 울려서 귀가 멍했다. 줄리아는 당황하지 않은 척 보이려고 애썼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그녀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이제는 츠바사가 마구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래요, 지각한 걸 잘 했다고 말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왜 다른 얘기까지 끄집어내는 거죠?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오디션 떨어진 거에 줄리아는 보태준 것도 없잖아요! 그리고 처음부터 아이돌이 될 생각 따윈 없었던 당신보다, 내가 훨씬 더 아이돌에 대해 진지할 걸요! 나는-나는-”
미키는 츠바사가 백댄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나는…….”
“……츠바사……?”
줄리아는 아까보다 더욱 당황해서 그런 기색을 숨기려 했던 것도 잊고 말았다. 츠바사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그녀의 눈가에서 흘러내려 뺨과 턱을 적시고 옷 위와 대기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츠바사는 천천히 손가락을 자신의 눈가로 가져가더니 빨개진 얼굴로 더듬거렸다.
“……나는, 진심으로, 되고 싶었는데. 미키 선배와…… 미키 선배의…….”
방울방울 떨어지던 눈물이 줄기로 바뀌더니 그녀가 얼굴을 찡그리는 동시에 왈칵 터져 나왔다. 츠바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외마디 신음을 내지르곤, 멍하니 서있던 줄리아를 지나쳐 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이, 츠바사……!”
줄리아는 당황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쫓아가기 위해 황급히 몸을 움직였지만, 마치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건 듯 다리가 우뚝 멈추고 말았다. 줄리아는 그대로 선 채 주먹을 쥐고 약하게 몸을 떨었다. 결국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츠바사를 따끔하게 혼내는 것도, 그녀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도…….
줄리아는 츠바사가 뛰쳐나간 문을 조용히 노려보다가, 잇새로 뱉어내듯 중얼거렸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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