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하야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보았다. 환풍기가 돌아가고 있긴 했지만 독한 담배 냄새와 술 냄새, 땀 냄새, 뭔지 모를 수상한 냄새마저 섞인 공기가 실내를 채우고 있었다. 치하야는 제대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코와 입을 막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이 너무 많은 데다 시끄러운 메탈 음악이 울려 머리가 몹시 어지러웠다. 치하야는 눈을 찌푸리고 노려보듯 사방을 살피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따금 사람들과 부딪힐 때마다 기분 나쁜 시선이 느껴졌다. 비웃는 것 같기도 했지만, 어차피 뭐라고 떠드는지 알 수도 없었다. 여기 온 게 실수였어, 치하야는 생각했다. 미키는 아주 유명한 클럽이라고만 말했다. 대통령도 왔었다나 뭐라나. 뉴욕까지 왔으니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는 게 좋을 거라는 말에 홀려서…… 하지만 온 지 30분도 안 돼서 미키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치하야는 혼자 남아 입에 맞지도 않는 칵테일을 들이키고 있었다. 미키를 찾아서, 돌아가자. 치하야는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 생각만을 확고히 떠올리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일본에 있었다면 찾기 쉬웠을 텐데, 여긴 금발이 너무 많다. 하긴 조명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지만……
“미키!”
클럽 안을 10분쯤 돌아다니다 마침내 미키를 발견하자, 치하야는 안도감과 반가움이 섞인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치하야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간신히 미키를 향해 다가갔다. 미키는 테이블 위에 머리를 올려놓은 채 엎드려 있었다. 치하야는 미키의 몸을 조심스럽게 흔들며 말했다.
“미키, 미키.”
미키는 잠들어 있다기보단 술에 취해서 그저 축 늘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키의 몸은 텅 비어있는 것처럼 치하야의 손을 따라 마구 흔들렸다. 잠시 후, 미키는 경련이라도 일으키듯 심하게 몸을 떨더니 천천히 일어나 치하야를 쳐다보았다.
“우웅- 치하야 씨?”
“일어나, 미키. 우리 이제 가야해.”
치하야는 음악 소리에 파묻혀 자신의 목소리가 안 들릴까봐 허리를 숙여 미키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전철 끊기겠어.”
“으음...”
미키는 간지럽다는 듯 한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알코올로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젖은 눈동자가 치하야를 향했다. 치하야는 자기도 모르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미키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길고 노란 머리카락이 부스스 따라 움직였다. 여기 오고 나서 관리를 거의 안 했기 때문인지 생기라곤 전혀 없이 마구 뻗쳐 있었다. 꼭 개털 같아, 치하야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키를 바라보았다. 미키는 치하야에게서 시선을 돌리더니 들고 있던 칵테일 잔을 만지작거렸다.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돼?”
“안 돼. 너 많이 취했어.”
“아아-”
미키는 다시 머리를 세게 북북 긁었다. 치하야는 미키를 바라보는 외국인 남자들의 수상쩍은 시선을 느끼고 얼른 그녀의 손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나가자니까.”
“아핫, 치하야 씨 멋져-”
미키는 입을 U자 모양으로 벌리고 헤실거리며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눈을 크게 뜨고 중얼거렸다.
“아, 미키, 이 곡 좋아해.”
미키가 어린애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치하야 씨, 같이 춤추자.”
“뭐?”
치하야가 미키의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이번엔 미키가 그녀의 팔을 세게 끌어당겼다. 댄스 홀을 향해 척척 걸어가는 미키를 보고 치하야는 다급히 말했다.
“잠깐만, 난 춤 못 춰, 미키.”
“왜?”
미키가 돌아보며 물었다. 그 얼굴이 너무나 태연해 보여서 치하야는 당황했다.
“그야… 여긴 사람도 너무 많고.”
“무슨 소리인 거야, 일본에 있을 땐 수만 명의 팬들 앞에서도 춤췄었잖아.”
그 말을 듣자 치하야는 말문이 막혔다. 두 사람은 바의 한쪽에 마련된 작은 무대 위로 올라갔다. 밴드로 보이는 사람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최근에 차트 순위를 기록한, 치하야도 알고 있는 유명한 팝송이었다. 미키는 무대 위에 서자마자 스위치가 켜진 듯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환호하자 그녀는 경쾌하게 손을 흔들며 웃었다. 치하야는 쭈뼛거리며 잔뜩 굳은 몸으로 서 있다가 그런 미키를 보자 어쩐지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미키가 먼저 다가와 치하야의 손을 붙잡고 한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그런 다음 치하야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치하야 씨도!”
치하야는 어절 수 없이 미키를 따라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트와 리듬에 집중하자 그제야 음악이 제대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요즘 한동안 그러지 않았는데. 치하야는 땀을 흘리며 점점 머릿속에서 다른 생각들을 몰아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계속 미키를 향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키가 그녀의 시선을 붙잡고 있었다. 일본에 있을 때도, 미키가 춤을 추기 시작하면 늘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 치하야는 자신의 몸도 머리도 텅 비어버리고, 세상에 미키와, 음악과 함께 남겨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 말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