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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마코 AU: 절험-프롤로그



prologue.

 

어둠의 장막이 세상을 덮었다. 해가 떠 있는 낮이 아무리 밝아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사람들을 잠식하고 있었다. 하나의 어둠이 물러나고 나면 곧 더 짙은 어둠이 나타나 전의 어둠을 삼켜버리는, 그런 세상이었다.

마코토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은 검은 양 떼로 뒤덮인 듯 새카맸다.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때라 황혼의 붉은 빛이 희미하게 어려 있을 뿐이었다. 그 풍경은 으스스하면서도 아름다워 보였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마코토는 걸음을 옮겼다. 손에 든 등잔의 불이 벽에 그녀의 그림자를 만들었다. 걸을 때마다 그림자와 촛불이 일렁거렸다. 마코토는 눈 하나 깜작하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문 채 앞만 보고 걸어갔다. 자신의 발자국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고 모퉁이를 돌아 굳게 닫힌 커다란 돌문 앞에 도착했다. 마코토는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두꺼운 문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매끄럽게 열렸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에 누군가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방 안에 들어선 그림자는 그 존재를 잡아먹을 듯이 커졌다. 마코토는 조심스럽게 등잔을 벽에 걸어놓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하루슈타인 각하.”

방 안의 존재는 그 뒷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망토로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몸을 돌리자 붉은빛 도는 갈색 머리와 차가운 녹색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코토는 입술이 바싹 마르는 걸 느꼈다.

마코토.”

하루슈타인이 마코토의 이름을 불렀다. 눈은 웃지 않는 채 웃는다. 그녀는 손을 들어 마코토를 향해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마코토는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몇 번을 봐도 눈앞의 그녀는 비현실적인 존재로 보인다. 눈을 떼는 순간 사라질 것만 같은.

하루슈타인의 코앞에 선 마코토는 무릎을 꿇고 그녀가 내민 손에 입을 맞췄다.

하루슈타인이 고개를 숙이고 마코토의 턱을 붙잡아 위로 당겼다. 낮고 요염한 목소리로 그녀가 묻는다.

마코토, 내가 시키는 대로 해줄 수 있어?”

마코토는 눈을 깜박였다.

그게 무엇이든지?”

질문이 아니라 조롱하는 듯한 어투다. 마코토는 하루슈타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조금 전 창밖으로 보았던, 하늘을 덮은 어둠보다도 더 짙고 슬픈 어둠이 그 안에 깃들어 있다. 굳어버린 입술을 움직여 대답한다.

무엇이든지요,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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