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으로 잠에서 깨어난다. 몸을 씻고 정장을 입고 자신의 방에서 준비된 식사를 한 후 회의장으로 간다. 마코토의 하루는 언제나 이렇게 시작했다. 그 날 이후로, 매일.
하루슈타인은 회의에 나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아니, 거의 회의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야겠다. 그녀를 제외한 성 안의 간부들이 전시 상황을 체크하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정해 해산했다. 대개는 늘 똑같은 결과였다. 각자가 담당하고 있는 구역의 하루슈타인 군단을 관리하고, 철수시키거나 지원한다. 하나마나한 형식적 회의이긴 해도, 이 성에서 사람을 만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회의장에 들어선 마코토는 눈을 크게 떴다. 언제나 비어 있던 상석에 앉아 있는 하루슈타인을 발견한 것이다. 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공중에 떠 있는 스크린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코토를 발견하자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마코토는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를 한 후, 자기 자리로 가 앉았다.
며칠 전부터 상황이 그들에게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마코토도 알고 있었다. 아미와 마미, 후타미 자매가 하루슈타인 군단에 대항하는 로봇 병기 ‘ IMR-765-S 키사라기’와 함께 나타나고부터 그들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후타미 자매는 늘상 눈엣가시처럼 하루슈타인 군단이 침략하려는 지역에 나타나 방해공작을 했다. 그것 때문에 큰 골치를 겪고 있었다. 하루슈타인이 오늘 회의에 나타난 건 그런 위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마코토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핥았다.
하루슈타인의 존재 때문인지 회의장은 평소와 달리 긴장감이 돌았다. 시간이 되자, 군 소속 과학자인 히비키가 나타나 헛기침을 두어 번 한 후 떨리는 목소리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해서, 여기까지가 현재 저희 군이 침략한 상황입니다.”
표정에 일말의 변화도 없이 히비키의 말을 듣고 있던 하루슈타인은 그녀가 말을 마치자 입을 열었다.
“서쪽 제도는 어떻게 된 거지?”
“그 곳은…… 얼마 전에 후타미 자매에게 기습을 당해…… 빼앗겼습니다.”
히비키는 안절부절 못 하며 말끝을 흐렸다.
“하, 하지만 곧 다시 되찾아 올 겁니다. 군사를 지원하면…….”
“수적으로 한계가 있을 텐데.”
하루슈타인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한 번에 많은 군사를 여러 지역에 보내 조종하는 건 힘들다고, 네가 전에 말했지 않았나.”
“그건…… 그렇지만요.”
히비키가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햄스터, 햄조가 낑낑거리는 소리를 냈다. 히비키를 위로해주려는 건지, 하루슈타인의 위압감에 겁을 먹은 건지 몰랐다.
“솔직히, 후타미 자매 때문에 우리 군단이 이렇게까지 애먹게 될 줄은 몰랐는데. 다시 봐야겠어.”
하루슈타인은 화가 났다기보단 재미있어 하는 투로 말했다.
“안 그래, 마코토?”
“네?”
마코토는 갑작스럽게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어깨를 움츠렸다. 하루슈타인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 이 사태에 대해서. 전투 총지휘관은 너니까.”
하루슈타인이 여전히 재미있어 하는 투로 말했다. 마코토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면목 없습니다. 후타미 자매와 그 둘이 조종하고 있는 로봇, ‘ IMR-765-S 키사라기’에 대해서는 밝혀진 정보가 거의 없어서…… 하지만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에 붙잡도록…….”
“흐음.”
하루슈타인은 불만이 있는 듯한 표정으로 스크린에 뜬 지도를 쳐다보았다.
“‘키사라기’라.”
하루슈타인이 말을 꺼낼 때마다 회의장 안을 감도는 긴장감은 더욱 팽팽해졌다. 마코토는 자신의 건너편 의자에 앉아 있는 야요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두 주먹을 무릎 위에 올린 채 식은땀까지 흘리며 떨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히비키, ‘3희석’에 대해서 보고할 게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 앗. 네, 그건-”
히비키는 허둥지둥 모니터 위에 새 창을 띄웠다. 기묘하게 생긴 세 가지 색깔의 돌덩이 같은 것이 화면 위에서 빛났다.
“아시다시피 ‘3희석’이란 로봇 병기가 가진 힘을 기술적 한계 이상으로 극대화 시키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돌입니다. 그 중 하나는 오래 전에 소멸되었고 하나는 이미 제가 ‘거대 하루슈타인’ 병기를 강화시키는 데 썼지만…….”
히비키는 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마지막 하나인 ‘키라젬’ 의 행방은 계속 묘연했죠.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 수 없고- 그런데 얼마 전 이 돌에 후타미 자매가 접촉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키라젬’의 능력을 써 ‘키사라기’를 강화시키기라도 한다면…….”
“우리에겐 핀치라는 거네.”
전혀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하루슈타인이 말했다. 그가 쓰는 말투는 조금 특이했다. 위엄을 가진 지도자의 말투 같으면서도 어딘지 평범한 여고생이라고도 느껴지는, 그 둘이 반반씩 섞인 말투였다. 마코토는 조용히 스크린 위에서 빛나는 돌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우선 그 ‘키라젬’이라는 걸 손에 넣도록 해야겠군.”
“하지만, 아직 후타미 자매가 그 돌을 확실히 손에 얻었다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어쨌든 우리보다는 가까이 있다는 거잖아.”
하루슈타인이 말했다. 그녀는 잠시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곧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코토는 그 미소를 보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야요이.”
“네? 넷! 각하!”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그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야요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대답했다.
“넌 아직 후타미 자매와 직접 만난 적 없지?”
“네… 네, 그렇습니다만.”
야요이 역시 불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루슈타인의 미소가 더욱 커졌다.
“그럼 잘 됐네. 네가 그들 패거리에 몰래 들어가서 키라젬에 대한 정보를 얻어오는 거야.”
“네? 제… 제가요?”
“그래, 스파이를 하는 거야, 멋지지?”
하루슈타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반면 야요이는 불쌍해 보일 정도로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 떨고 있었다.
“하, 하지만 각하…….”
“야요이.”
하루슈타인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사라지자 야요이는 완전히 굳어버렸다.
“너는 지금 우리 군에게 아무 도움도 못 되고 있어. 걸림돌일 뿐이라고, 그런 네가 공을 세울 수 있도록 내가 기회를 주는 거야.”
야요이의 눈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알겠습니다.”
“그래. 뭐든 알아낸 게 생기면, 바로 보고하도록 해. 절대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하루슈타인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회의는 이만 끝내고, 다들 즉시 각각 맡고 있는 구역으로 이동한다.”
“네!”
힘찬 대답을 끝으로 저마다 분주히 움직이느라 회의장은 어수선해졌다. 마코토 역시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부 중 제일 높은 자리에 있는 만큼 모든 전투 상황을 체크해야 하기 때문에, 회의가 끝나면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녀가 이동하려고 할 때 하루슈타인이 느닷없이 외쳤다.
“오늘은 나도 직접 나간다.”
“네?”
마코토는 고개를 홱 돌려 하루슈타인을 바라보았다. 회의장에 직접 나오는 게 드문 만큼이나, 그녀가 직접 전투에 참가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마코토와 히비키는 불안한 눈빛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히비키, 미점령 지역 중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디지?”
“훗카이도입니다.”
“그럼 거기로.”
“그럼 ‘거대 하루슈타인’을 준비시킬까요?”
“아니, 그건 아니지. 그냥 내 전용 드론을 대기시켜줘. 군사는 최상급 부대로 열 대 정도만.”
하루슈타인은 마치 미리 계획해놓은 듯 척척 명령을 내렸다. 마코토는 약간 얼이 빠진 표정으로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마코토, 넌 나를 따라와.”
“예?”
“가끔은 그러는 게 좋아.”
하루슈타인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는 망토를 휘날리며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마코토는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서둘러 그녀를 쫓아갔다.
하루슈타인 군단에 소속된 로봇 병기들은 그 등급에 따라 부대가 나뉘었다. 오직 하루슈타인만이 조종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최후결전 병기 ‘거대 하루슈타인’ 아래로 최상급, 상급, 중급, 하급 부대가 있었다. 당연히 아래로 갈수록 그 수가 더 많았고 등급에 따라 출동하는 지역도 달랐다. 하급 로봇들은 민간인 지역을 관리하고 위협하는 용도로 쓰였지만, 최상급 부대는 세계 연합군이나 각국의 정부군을 상대로 싸우는 본격 전투용이었다. 이 로봇들은 고위 간부들만이 조종할 수 있었다. 마코토는 드론에 올라탄 채 공중을 이동하며 컨트롤러에 집중했다. 최상급 군사 로봇에는 히비키가 설치한 오토 모드가 깔려 있어서 세세하게 직접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각자 어느 수준 이상으로 싸울 수 있었다. 그래도 전체를 살펴보는 건 마코토가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하, 하루슈타인 군단이다!”
“저기, 본인이야!”
“다들 제 위치로!”
하루슈타인이 더 많은 군사를 이끌고 직접 전투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한창 싸우고 있던 군사들이 우왕좌왕 하며 혼란에 빠졌다. 위험하다고 말렸는데도, 마코토는 머릿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선가 포탄이 날아왔지만 그들 주위를 둘러싼 방어용 소형 로봇이 멋지게 막아냈다. 마코토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하루슈타인을 향해 말했다.
“역시 그냥 들어가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니, 괜찮아. 조금만 더 하면 이 지역도 끝날 것 같으니까.”
하루슈타인이 생기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오랜만에 직접 전투 현장을 보니 피가 끓는 모양이었다. 마코토는 컨트롤러를 손에 들었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사방에 보이는 적들을 향해 쉴 새 없이 총알과 폭탄을 날렸다. 군사 두 대가 회선이 끊겼다. 하루슈타인은 정부군의 군함과 탱크를 몇 대나 부서트렸다.
“……야요이한테 스파이를 맡기신 건, 재고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때, 마코토가 말을 꺼냈다. 화약 냄새로 코가 얼얼했다.
“뭐?”
하루슈타인은 마코토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 했는지, 다가오는 비행기 하나를 박살낸 다음 물었다. 마코토는 말을 반복했다. 하루슈타인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그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마코토, 지금 나한테 충고하는 거야? 네가?”
마코토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가 그런 식으로 말할 때마다 소름이 끼치게 싫었다. 어린아이가 포르노를 찍는 것처럼 옳지 않은 것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마코토의 표정을 본 하루슈타인의 웃음이 옅어졌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애도 좀 더 모진 경험을 해보는 게 좋아. 나중에 다 도움이 되겠지.”
누가 들으면 좀 엄한 부모 말인 줄 알겠다. 마코토는 더 말해봤자 소용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입을 다물었다. 연기 때문에 눈이 아팠다.
“마코토.”
“네?”
“오랜만에 같이 나왔는데 별로 기뻐 보이지 않는구나.”
하루슈타인이 그렇게 말하자 마코토는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루슈타인은 마코토를 보고 있지 않은 채-여전히 싸움에 집중하며-말을 이었다.
“예전엔- 내가 막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항상 같이 싸웠잖아. 너는 내 옆에서, 나는 네 옆에서. 환상의 콤비였지.”
“그랬죠.”
마코토 역시 회상에 잠기며 말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죠. 이제 각하는 세상을 직접 지배하시는 분이니까. 이런 사소한 전투에 직접 나오실 분이 아닌데.”
“그렇지.”
하루슈타인이 말했다. 잠시 후 그녀는 덧붙였다.
“나는 가끔 그 때가 그리워.”
“…….”
“기쁘지 않니?”
“아뇨… 기쁩니다.”
마코토는 약간 당황한 채 대답했다. 하루슈타인은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 마코토를 바라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순간- 마코토는 순간 그 미소에 예전의 그녀가 겹쳐 보여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그럼 좀 더 티를 내도록 해.”
귓가에 뭔가가 스치는 소리가 났다. 총알이었나,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마코토는 입술을 핥았다.
“각하.”
“응?”
“왜 이 일을… 왜 세계 침략을 시작했는지, 그것도 기억하고 계시나요?”
바로 그 때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 들리더니, 무수한 전투기들에 둘러싸인 폭탄 하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하루슈타인은 재빨리 드론에서 뛰어올라 한 손에는 컨트롤러를, 한 손에는 총을 쥐고 공중에서 폭탄을 처리했다. 방어용 로봇들이 세세한 파편으로부터 그녀를 지켜주었다. 안정적으로 드론 위에 착지한 하루슈타인은 다시 마코토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마코토.”
놀랍도록 평온한 목소리와 얼굴이었다. 그녀 뒤에서 전투기 하나가 폭발하고 있는데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코토는 다시 싸움에 집중했다.
“마코토, 목욕하고 내 방으로 와.”
전투가 끝나자, 하루슈타인은 그 한 마디만을 하고 먼저 성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겨진 마코토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나처럼, 해가 지기 직전이었다.
하루슈타인의 힘은 태양을 그 기원으로 한다. 해가 지고 나면 그녀는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고, 그건 그녀가 이끄는 수많은 하루슈타인 군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때문에 모든 전투와 침략은 해가 뜬 아침부터 해가 지는 저녁까지만 진행되었다. 그녀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 반 년 전, 태평양에서의 커다란 전투를 마치고 난 날 밤이었다.
-각하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전투에서 입은 상처로 열이 올라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하루슈타인 앞에서, 마코토 역시 상처투성이인 몸으로 외쳤다. 히비키는 답지 않게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태양과 각하를 연결하고 있는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 같아.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침략을 완전히 끝낼 수 있을지 없을지.
하루슈타인은 반쯤 의식을 놓은 채 신음하며 히비키의 말을 듣고 있었다.
-말하자면, 각하의 몸 내부에서부터 열과 흥분을 일으킬 수 있는 촉진제가 필요해.
-약을 만들어주면 되잖아.
-자신은 의사가 아니라구! 그리고 각하의 몸은 보통 사람과는 달라서 복잡해. 고통을 잠재우는 거라면 몰라도, 잃어가는 힘을 다시 일으키는 거라면…
생각에 잠긴 히비키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그게 뭔데? 빨리 말해봐!
-성관계를 하는 거야.
-……뭐?
-진짜라구. 아니면 성적 흥분을 할 수 있는 뭔가를 하든지…… 열과 흥분은 물론이고, 관계 중에 나오는 특별한 호르몬이 태양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니까. 완전한 복구는 어려워도 조금쯤이라면…… 하지만 평범한 인간은 버틸 수 없겠지. 각하의 몸에 대해서 오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어야…….
그 때 하루슈타인이 헐떡거리며 일어나 눈을 떴다. 그녀는 마코토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서 마코토는 그녀가 무얼 바라고 있는지 알았다.
그리고 그 때부터 한 달에 한두 번, 해가 지면 그녀의 방으로 찾아갔다.
새벽 다섯 시 쯤, 마코토는 비틀거리며 하루슈타인의 방에서 나왔다. 기진맥진한 하루였다. 또 씻어야 한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그보다는 어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침대 위에 쓰러져 자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코토는 가만히 그 형상을 응시했다. 창을 통해 달빛이 들어와 히비키의 얼굴을 비췄다.
“수고했어, 마코토.”
“히비키…….”
히비키는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마코토에게 물 한 컵과 알약 하나를 내밀었다. 마코토는 말없이 그것을 마시고, 삼켰다. 히비키는 초조해 보이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곧 일식이 다가올 거야. 적들은 그 기회를 틈타 총공격을 해올 거라구. 하루슈타인 각하의 힘이 최악으로 약해지는 건 태양이 가려지는 일식 때라는 걸 저들도 알아버렸으니까.”
“…….”
“이대로는 안 돼. 오늘 새로 침략 지역을 늘렸다고 해도, 땅을 넓히기만 하는 건 솔직히 이제 무의미해.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어… 키라젬… 키라젬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히비키는 두 손을 비비다 마코토를 원망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야요이한테만 맡길 순 없어. 너도 알잖아.”
히비키는 전부터 묘하게 야요이에게 애착을 보이곤 했다. 마코토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나도 직접 말씀드려 봤어. 하지만 알잖아. 한 번 정한 건 굽히지 않으신다는 거.”
“그러니까 다른 수를 써봐야지.”
히비키가 즉시 대답했다.
“잘 들어, 지금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로봇 병기들은 ‘거대 하루슈타인’을 포함해 모두 다섯 대야. 후타미 자매의 ‘IMR-765-S 키사라기’, 괴로봇 ‘아즈사이즈’와 ‘유키드릴’, 그리고 ‘IMR-765-N 릿체인’.”
마코토는 잠자코 히비키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 중 공식적으로 하루슈타인 군단에 대항하고 나선 건 후타미 자매의 키사라기에, 릿체인과 유키드릴도 협력한다고 나섰지. 다행히 아즈사이즈가 우리 편에 있긴 하지만 만약 이 네 대가 힘을 합쳐 싸운다면 키라젬이 아니어도 우리에겐 위험해.”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마코토는 약간 짜증이 섞인 투로 말했다. 빨리 방으로 가서 자고 싶은데.
“호시이 미키.”
히비키가 사진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사진 속에는 금발머리 여자애 한 명이 태평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다.
“‘릿체인’의 조종사지. 다른 둘을 설득하는 덴 실패했지만, 우린 그 녀석의 도움이 필요해. 그러니까 야요이가 스파이 짓을 하는 동안 너는 이 녀석한테 접근해서 우리 편으로 만들어.”
“우리 편으로 만들라니, 내가 어떻게?”
“자신도 몰라! 꼬시든지 밥을 사주든지, 그런 것 정도는 알아서 생각하라구. 네 특기분야잖아.”
히비키는 성가시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리고 갑자기 길게 하품을 하더니 눈물을 글썽였다.
“며칠 내내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하네. 너도 그럴 텐데 그만 들어가서 쉬어. 내일 회의에 나오는 거 잊지 말고.”
“……응.”
마코토는 히비키가 건네준 사진을 주머니에 넣었다. 히비키는 마코토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후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코토도 걸음을 옮겼지만, 왠지 몸을 똑바로 가눌 수가 없었다. 비틀거리다 벽에 손을 짚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해가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