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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writing

[밀리마스] 줄리아

줄리아 생일 기념...인데 사실 3월에 썼던 글.(...)

그땐 좀 대충 썼던걸 다듬어서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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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노상 라이브를 하는 도중 길을 가던 사람과 눈이 마주치곤 한다. 어떤 사람은 무시하고 지나치거나, 어떤 사람은 발을 멈추고 노래를 듣거나 한다. 이따금 노래가 끝나고 박수를 치거나 펼쳐둔 기타 케이스에 돈을 집어넣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또 아주 드물지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정확히는 말을 걸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쩐지 용기가 안 나 망설이는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르면서 몇 번이나 눈이 마주친 덕에 그의 모습을 제대로 훑어볼 수 있었다. 후줄근한 정장 차림에 어쩐지 지저분한 머리. 저 사람, 분명히 독신에 여친 없을 거다. 속으로 그런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곧 실례인 것 같아 지워 버렸다. 어쨌든 그는 한 자리에 서서 내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몇 곡이나 들어주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살짝 미소를 보냈다. 그러자 그는 마침내 용기가 난 듯 입을 벌리고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순간 다리에 쥐가 났는지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푹 숙였다. 정말로 몇 십 분이나 움직이지도 않고 서있었던 건가. 미련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웃어 버렸다. 때마침 잽싸게 신호등이 바뀌고, 나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러면서 흘긋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타이밍이 야속했다. 아니 아니, 이런 곳에서 나 같은 여자애한테 말 거는 아저씨야 뻔하지. 하지만 그래도, 못내 아쉬운 느낌이 버스에 타고도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기타를 메고 문을 여니, 아는 얼굴 몇몇이 나를 보고 반가운 척 인사를 건넨다. 지난번에 왔을 때 주의를 줬는데도 또 담배 냄새가 난다. 나는 숨길 생각도 없이 얼굴을 찌푸리고, 건성으로 인사를 받으며 라이브 하우스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줄리아, 오랜만이다. 오늘은 어땠어? 늘 똑같지 뭐, , 줄리아 오늘 버스킹 했어? 보러 가고 싶었는데- 늘 그 말만 하고 절대 안 가잖아, 그런가, 하하하다른 애들은 아직 안 왔어? 그런 것 같은데, 그나저나 너, 또 학교 빠졌다며. 누가 걱정하더라. 쓸데없는 참견이야- 아니, 진지하게 묻는 거야. 넌 뭘 하고 싶은 거야? 기타 음을 조정하던 손가락이 멈춘다. 뭘 하고 싶냐고? 나야 네 음악을 좋아하지만 글쎄, 넌 언제나 뭔가 부족한 듯이 보여서. 뭘 하고 싶은 건지, 어디로 가려는 건지, 네가 있는 자리는 항상 위태로워 보여- 어느새 그 목소리는 내 것이 되어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다. 난 그냥음악이 좋아서, 펑크록이 좋아서, 여기에 오는 것뿐이야- 그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단 한 명이라도, 내 노래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갑자기 얼빠진 누군가의 표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또 웃음이 나왔다

다음에 만나면, 내가 먼저 말을 걸어볼까. 

왜 그래? 들어봐, 오늘 웃긴 일이 있었어-

 

간밤에, 나도 모르는 사이 한 걸음 더 어른에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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